정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우린 너무 몰랐다’ 2탄 … 제주 4.3사건과 여순민중항쟁은 하나!

서효선

tbs3@naver.com

2019-02-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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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사진=연합뉴스>
도올 김용옥<사진=연합뉴스>
  •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2부

    [인터뷰 제1공장]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우린 너무 몰랐다’ 2탄 … 제주 4.3사건과 여순민중항쟁은 하나!

    - 도올 김용옥



    김어준 :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저희가 준비한 특집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도올 김용옥 선생님 모시고 ‘우리는 너무 몰랐다.’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 책 지난주에 방송 나오셔서 반응이 좀 있습니까?



    김용옥 : 정말 저는 충격을 받았는데.



    김어준 : 충격이요? 아무 반응이 없어요?



    김용옥 : 우리 김어준 공장장의 정말 영향력이 그렇게 센 줄은 몰랐네.



    김어준 : 아, 반응이 있군요. 다행입니다.



    김용옥 : 반응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책을 꼭 많은 사람들한테 읽혀서 사회운동화 시켜야 되겠다.



    김어준 : 아, 이 책을 읽은 분들이?



    김용옥 : 네, 그래서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의식의 변화가 온다. 그래서 이렇게 그룹 그룹으로 책을 주문하면서 저한테 책을 좀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50그룹이 돼요.



    김어준 : 선생님, 책 광고는 그만하시고요. 지난주의 내용이 중요한데, 지난주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을 먼저. 잊어버린 분도 계시고 오늘 방송 처음 들은 분도 계실 테니까. 지난주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빨갱이. “지금도 우리를 재배하는 단어인데, 이 빨갱이라는 단어가 해방정국에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촛불을 통해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그 해방정국 때 만들어졌던 인식, 권력, 언어 그 프레임 전체가 여전히 남아있다. 해방정국으로부터 우리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말씀하셨고, 그런데 여러분, “해방정국이 어땠냐 당시에 일장기 내려오고 해방이 된 게 아니라 25일 후에 바로 성조기가 올라갔고, 그리고 당시 해방이 전혀 달갑지 않았던 사람들, 이제 자신들 시대가 끝난 줄 알았던, 친일했던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다시 지배계층이 돼 버렸다. 그런데 이 시대의 문제점을 다 꿰뚫어보았던 여운형 선생은 거의 유일하게 꿰뚫어봤는데, 그런데 이제 신탁 반탁 논쟁 벌어지고 이승만 대통령 등장하고 하면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고 분단까지 이어져 버렸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잘 요약했습니까?



    김용옥 : 아주 훌륭합니다.



    김어준 : 이 말씀….



    김용옥 : 하여튼 우리가 지금 오늘날도 광주민중항쟁을 감히 그….



    김어준 : 그렇죠, 감히.



    김용옥 : 폭동이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뭐든지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가르고 자기는 완벽하게 선이고 타는 악인데 그 악은 전부가 북한 소행으로 모으는 이런 빨갱이.



    김어준 : 프레임.



    김용옥 : 이분적인 그런 프레임웍이 우리 사회를 아직도 재배하고 있는데 이것의 근원을 파고들어가야 되거든요. 그 근원은 역시 해방 정국 3년에서 생긴 것이고 그 해방 정국 3년의 핵심은 바로 제주4.3와 여순 민중항쟁이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사건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이 해방정국의 소위 문제가 친탁 반탁이든 뭐 이런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김어준 : 알겠습니다. 지난주에 말씀하셨던 것은 그렇게 해서 분단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게 응축된 사건이 바로 오늘 다루게 될 4.3과 여순이다. 그렇게 생각하신 거고 두 사건을 꼽으신 거고 그래서 예고도 다음 주에는 이번 주 오늘은 제주4.3과 여순에 대해서 얘기하실 거라고 하셨는데 자, 그러면 제주4.3사건부터 선생님의 시선으로 정리해 주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왜 벌어졌는지 쭉 정리를 해 주십시오.



    김용옥 : 뉴스공장을 뒤에서 서포트 하는 훌륭한 여기 작가 분이 있는데, 그 작가 분도 제주도 출신이에요, 알고 보니까.



    김어준 : 있습니다, 한 사람.



    김용옥 : 이윤정 씨인가? 그런데.



    김어준 : 이름까지.



    김용옥 : 이 제주도 사람을 내가 얘기하는 거는 제주도 사람을 우리가 상당히 섬나라의 이렇게 후진국처럼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뭐냐 하면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가장 개화된 곳이에요, 제주도가. 개화된 곳이고.



    김어준 : 먼저 개화된 곳이군요.



    김용옥 : 먼저 개화된 곳이에요. 왜냐하면 제주도 열한 개 도시를 돌아서 오사카까지 가는 정기연락선이 있어서.



    김어준 : 신문물이 빨리 들어왔다.



    김용옥 :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 황금기를 맞아요. 오사카에 거의 자기 제주도의 Extension을 만들어서 거기서 상당히 많은 활동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신문도 내고, 자기들끼리. 그래서 지금도 오사카 이카이노라는 데 가면 완전히 제주도 사람들의 한인촌이거든요. 그러니깐 이 사람들이 거기서 좌익 사상에도 일찍 노출이 됐고 그래서 결국은 해방정국 때 거의 6만 명이 갑자기 들어오는데, 이들이 그 당시에는 가장 선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김어준 : 선진 문물을 먼저 접했으니까?



    김용옥 : 일본에서 접했고, 그래서 뭐냐 하면 제일 먼저 여운형 선생이 건주를 만들면서 인민위원회라는 것을 만들라고 했을 적에 제일 먼저 강력한 조직이 된 데가 제주도.



    김어준 : 제주도였다.



    김용옥 : 그리고 제주도라는 지역이라는 게 거대한 섬이 이렇게 고립돼 있잖아요, 30만 명이. 이거는 인민위원회가 성립하기 딱 좋은 조건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인민이라는 말을 마치.



    김어준 : 빨갱이라고 동의를.



    김용옥 : 빨갱이라는 말로 쓰는데 유진오 선생도 헌법 만들 때 이 인민이라는 말을 우리가 써야 되는데 이거 못 쓴다고 아주 안타까워하셨거든요. 그런데 인민이라는 말은 원래 토지인민정서라고 그래서 맹자에 아주 대표적으로 나오는 말이고 전통적으로 조선 왕조를 통해서 인민, 인민 썼던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인민위원회라는 것은.



    김어준 : 빨갱이하고 상관이 없는 거군요.



    김용옥 : 빨갱이하고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냥 보통사람위원회라는 의미이에요, 그 당시에는. 사람위원회.



    김어준 : 조선시대부터 쭉 써왔던 단어고.



    김용옥 : 쭉 써왔던 단어이기 때문에.



    김어준 : 그게 나중에 덧붙여진 거군요, 빨갱이 이미지가.



    김용옥 : 그래서 뭐냐 하면 전부 지금 인민이라는 말이 들은 거가 왜곡됐는데, 전국이 인민위원회로 조직이 되었는데, 자체적으로. 그것도 누가 시킨 게 아니에요.



    김어준 : 지금 감각으로 말하자면 시민위원회가 만들어진 거네요.



    김용옥 : 그렇죠, 보통 사람들의 시민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제주도 시민위원회는 어디보다도 강력했다는 거죠. 그래서 미군정이 들어왔을 때 미군정이 이 인민위원회를 뚫지 못했어요. 그래서 타협을 한 거라고. 그래서 인민위원회가 제주도를 잘 운영이 됐기 때문에 미군정도 인민위원회를 이렇게 존중해 가면서 같이 이렇게 다스렸거든요. 그러니까 상당히 불편했죠, 이승만이 저기하기에는. ‘야, 미군정조차도 거기 가서 그렇게 맥을 못 쓰느냐. 제주도가 뭐가 그렇게 세냐?’



    김어준 : 지방자치가 처음….



    김용옥 : 아니, 일찍, 일찍.



    김어준 : 일찍된 곳이네요.



    김용옥 : 된 곳이죠. 그래서 이제 탄압을 계속 그렇게 해서 하다가 이 1947년 3월 1일 날 3.1절 기념식을 했는데 거기서 그냥.



    김어준 : 발포가.



    김용옥 : 몇 명의 어린아이들이 부녀자들이 기마병에 의해서 짓밟히는 사태가 발생을 했는데 그거 그냥 내려서 미안하다고 그랬으면 될 텐데, 거기 항의하는 사람들을 막 발포를 해 버리잖아요. 그래서 6명이 죽고.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이제 그다음 날로부터 바로 인민위원회가 발동을 해서 거의 전 도민이 스트라이크를 해요. 파업을 한다고요.



    김어준 : 그러니까요. 갑자기 총을 쏴서 어린아이하고 부녀자들을 죽였으니까 당연히 동네 사람들은 화가 나죠, 당연히.



    김용옥 : 그런데 거기에 내려와서 그 당시 조병옥이라는 사람이 미군정의 이제 미군정하에서 아주 우리나라 경찰, 아주 최고 총수였는데, 그 사람이 와서 ‘이건 정당방위다’ 하고 ‘사과할 필요 없다’ 그러면서 ‘짓밟아라’ 이런 방식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서 이제 사태가 악화돼서 이제 나중에는 경찰로 안 되니까 본격적으로 이제 군대가 투입되게 되고.



    김어준 : 거기도 서북청년단이라고 또 투입되지 않습니까?



    김용옥 : 아니요. 거기, 그러고 서북청년단을 투입하게 되고 이러면서 제주도를 아주 쑥밭을 만들어 놓은 거죠.



    김어준 : 서북청년단은 나중에 알고 봤더니 보수개신교가 주도한, 목사님들이 조성도 했다고 하고 그런 얘기도 있던데.



    김용옥 : 북한에서 45년부터 이 김일성이가 들어서면서 사회 개혁이 거기에는 굉장히 빨리 진행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토지개혁이라든가 모든 게 빨리 진행되니까 그때가 북한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말하는 반민특위를 아주 철저하게 한 거예요. 철저하게 하니까 거기에 당하는 사람들이 뭐냐 하면 그 당시에, 김일성은 굉장히 유리했던 게 38선이 열렸거든, 그때는. ‘싫으면 가라.’ 그래서 전부 거기서 숙청당한 사람이 남으로 내려온 거예요, 몇 백만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뭐냐 하면 얼마나 자기가 거기서 당했으니까,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김어준 : 이 빨갱이들 다. ‘빨갱이라고 규정하면 이 빨갱이들 다 없애버려야 돼.’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김용옥 : 그런 사람들이죠. 아주 무조건, 무지막지한 증오감을 가지고 이해할 만도 하나, 그러나 그 사회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 사회에 있어서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한다는 원칙이 있으면 거기에 따라서 토지 많이 갖고 있던 사람들은 내놔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거 못 내놓겠다.’ 이런 사람들이 내려와서 이를 갈면서 그들이 대개 서북지역,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 이제 토지가 거기는 텄으니까 그 사람들을 우리가 서북지역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김어준 : 그래서 서북청년단이라고 그러군요.



    김용옥 : 그 서북청년단이고 거기가 처음에는 기독교세력이 주로 장악했던 곳이기 때문에.



    김어준 : 그분들의 증오심을 이용한 거군요, 제주도에서.



    김용옥 : 그거를 갖다가 이승만은 이 서북청년단들이 왜 또 강하게 그렇게 뭉쳤냐 하면 북한에서 자기들이 살았던 거를 증명하려면 예를 들면 김일성대학을 다녔다 하면 급하게 내려오는 사람들이 무슨 대학증명서가 있겠어요, 뭐가 있겠어요? 그러면 한국에 와서 이제 똑같이 인정을 받으려면 서북청년단에 가서 도장을 받으면 인정을 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해방 이후에 서북청년단이 상당히 조직이 강했어요. 그러니깐 이거를 활용해서 뭐냐 하면 서북청년단이 이 제주도 토벌에 나가면 너희들을 그냥 경찰, 겉으로는 경찰하고 군인처럼 만들어서 보내는 거지 뭐 이상한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혀서 보내는 게 아니에요. 전부 그냥 겉으로 보면 군인이고 경찰 구분이 안 돼요, 서북청년단이.



    김어준 :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증오심들을 이용해서 이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규정한 다음에 ‘죽여라’ 이렇게 된 거군요.



    김용옥 : 무조건….



    김어준 : 그리고 자기충성심을 또 입증하려고, 서북청년단은, 입지를 만들려고.



    김용옥 : 토벌이라고 그랬거든요. 토벌이라는 것은 진압하고 달라요. 진압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회유도 해서 어떻게든지 그것을 진압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토벌은 만나는 대로 죽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토벌 명령을 내렸고 이 서북청년단은 특히 뭐냐 하면, 재미난 게 뭐냐 하면 월급을 안 줬거든. ‘무조건 가서 너희들은 알아서 해먹어라.’



    김어준 : 괴물을 만들어 놔서 보냈네요.



    김용옥 : 네, 그러니까는 가서 무조건 착취하고 뺏고 강간하고, 특히 강간을 많이 했죠. 그러니까….



    김어준 : 그리고 갖고 싶은 건 죽여서 재산을 가져가 버리고.



    김용옥 : 무조건 빼앗는 거죠. 그러니까 이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알지만 제주도민들의 정말 그 당시에 당한 모습이 그 ‘지슬’이라는 영화에 너무 잘 표현돼있는 거예요.



    김어준 : 그러니까 그냥 일반인들도 그런 식으로 재산 뺏기고 당하고 한이 됐겠네요, 당연히.



    김용옥 : 그러니까 거기다 군인을 투입하게 되는데, 9연대라고 하는 연대가 투입이 되는데, 무조건 죽이려고 하니까 이 9연대 김익렬이라는 분이 뭐냐 하면 ‘어떻게 우리 군인인데 우리가’



    김어준 : 민간인을.



    김용옥 : ‘민간인을 이렇게 토벌을 하냐.’



    김어준 : 3만 명 이상 죽었다고 하니까.



    김용옥 : 그래서 거기에.



    김어준 :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3만 명 정말 전쟁도 난 게 아닌데.



    김용옥 :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린 건 뭐냐 하면 사실은 나치는 아우슈비츠에서 그렇게 죽였다고 그러지만 그 죽이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리고 그건 자기 동족의 사람이 아니고 유대인이라고 하는….



    김어준 : 이민족을 죽였는데.



    김용옥 : 이민족을 대상으로 해서 악독한 짓을 한 건데. 사실은 제주도의 그당시 사태라는 건 아우슈비츠보다 더 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악랄한 사태에 군인인들 또 양심 있는 경찰인들 그거 견딜 수가 없는 거죠.



    김어준 : 괴롭겠죠.



    김용옥 : 괴롭죠. 그러니까 김익렬이라는 소위 말해서 9연대 대장이, 대장이 이거는 저쪽 소위 말해서 그 당시에 반란이라고 규정했던 그 대장과 내가 타협을 해서.



    김어준 : 문제를 해결하겠다.



    김용옥 :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둘이 만나요.



    김어준 : 만나서 합의를 보는데.



    김용옥 : 다 봤어요. 합의를 봤는데, 조병옥이가 또 내려와서 이거를 무산시켜 버리는 거죠.



    김어준 : 합의를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김용옥 : 이쪽 정부 입장에서는 계속 제주도를 문제를 일으켜야만, 모든 것이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단선단정반대거든요. 단독선거 단독정부수립 왜냐하면 우리 국민들은 만약에 이렇게 해서 분단이 되면 반드시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간다는 걸 그 당시에 다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은 사실 6.25을 예언하고 그걸 반대를 한 거라고요. 그게 대표적인 게 아무리 김구 선생이 우파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가장 진실하게 이 나라가 분단되면 안 된다. 그래서 끝까지 김규식 데리고 같이 북한까지 올라가서 그 고생을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나 이승만은 정읍선언을 하고 당시 그러면서 ‘나는 단독선거를 해서 단독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다’



    김어준 : 남한 대통령이라도 하려고 한 거죠.



    김용옥 : 그렇죠. 남한 대통령해서 나 혼자 먼저 해먹어야겠다. 그러니까 이 이승만으로서는 당시 아무런 국내 기반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김어준 : 그래서 제주도가 필요했군요. 봐라, 빨갱이들 봐라.



    김용옥 :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소위 말해서 ‘야, 이걸로 부족하니까’ 이 9연대 사람들이 이제 반란을 일으키는 거 아닙니까? 막 40여 명이 같이 탈영해서 반기를 들기도 하고.



    김어준 : 더 이상 제주도 사람 못 죽이겠다고.



    김용옥 : 더 이상 못 죽이겠다고 하니까, ‘자, 그러면 여수에 14연대 있잖아. 제일 가까운 데, 14연대’ 원래 광주에 4연대라는 데서 급조한 부대거든요. ‘거기 14연대 있잖아. 걔들 데려와’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재미난 게 뭐냐 하면 이 제주도의 9연대에 있던 김익렬 중령이 조병옥에 의해서 잘려요. 잘리고 나서 간 데가 바로 여수 14연대장으로 갔다고.



    김어준 : 또 복수심을 이용한 거군요.



    김용옥 : 그런데 그 14연대에 가서 제주도 사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은 여수에 있는 군인들이 제주도의 사정을 그렇게 잘 알고 ‘우리는 못 가겠다. 토벌하러는 못 가겠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사실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미리 김익렬 중령이 이쪽 14연대 연대장으로 갔기 때문에 거기서 몇 달 동안을 얘기를 해 줍니다.



    김어준 : 말도 안 되는 게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김용옥 : 벌어지고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김어준 : 이승만이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 듣다 보면 자기 기반도 없고 단독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그러면 빨갱이를 무서워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제주도가 그런 일이 바로 벌어지고 있는 장소다. 빨갱이 봐라. 여기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계속 커져야 되니까 해결 됐다고 하는데도 그거 자르고 다시 또 군대 보내고 이런 일을 벌인 거군요.



    김용옥 :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뭐냐 하면 여수순천반란이라고 그랬단 말이죠. 그런데 반란이라는 말은 그거는 이승만이 만든 말이고 이때는 군인들이라도.



    김어준 : 그러면 여수, 순천 그리고 여순반란이라고 저도 어릴 때부터 배웠는데 여순반란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어떻게 넘어갑니까, 이게 이제?



    김용옥 : 여수에 있던.



    김어준 : 군인들.



    김용옥 : 14연대 사람들을 보고 제주도 토벌을 나가라. 그리고 배를 거기다 댔다고. 그래서 신무기를 싣고 그당시에 뭐냐 하면, 이 경찰 뭐냐 하면 조선경비대라고 그래서 소위 말해서 군대가 아니고 경찰 예비대 형태로, 왜냐하면 서로가 미소공동위원회에서 군대를 갖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조선경비대라는 말로 했던 건데 그 사람들에게 뭐냐 하면 신무기를 주면서 ‘이제 제주도로 가라, 토벌 명령이 내려오면.’



    김어준 : 기존에 있는 군대는 지금 제주도 주민들하고 같은 편이 돼버렸다.



    김용옥 : 같은 편이 전체가 된 건 아니지만.



    김어준 : 아니지만.



    김용옥 : 하여튼 그거 가지고는 안 되니까, 왜냐하면 그 당시 군인 연대라는 게 향토 연대들이라고. 그 지역에서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러니까….



    김어준 : 옛날방식이네요.



    김용옥 : 옛날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제주도 연대에는 제주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주도를 죽인 게 어렵죠. 그러니까 여기를 보내려는데 사실은 여수라는 곳은 제주도 사람들도 많았고 상당히 친화감이 있었거든요, 제주도하고.



    김어준 : 그리고 진작에 가서 그 사정도 얘기해 줬고.



    김용옥 : 사정도 얘기해 줬고 그러니까 토벌 명령을 내려서 가니까 이 사람들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거 어떻게 제주도로 토벌을 하러 가냐?



    김어준 : 사정을 뻔히 아는데, 우리가.



    김용옥 : 자국민을 죽이라는데, 군인들이 자국민을 죽이라고 있는 건 아니지 않냐. 그래서 그 명령을 거부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벌명령거부병사위원회거든요, 이 사람들이 내건 것이 반란이 아니고.



    김어준 : 반란이 아니라. 그래서 국가에 대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김용옥 : 쿠데타가 아니죠.



    김어준 : 그런 건 반란인데, 그게 아니라 ‘우리 토벌 못하겠어요.’ 이거 아닙니까?



    김용옥 : 그렇죠. 토벌 못하겠다는 거니까.



    김어준 : 자국민 못 죽이겠다는 거 아닙니까?



    김용옥 : 이거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거를 갖다가 항명이라든가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게 명령 자체가 군대 내에서 있어서는 아니되는 명령이었고.



    김어준 : 부당한 명령이었다.



    김용옥 : 부당한 명령이었고 그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통 사람으로서 의로운 결정을 내린 것뿐이에요. 그리고 재미난 건 뭐냐 하면 이들은 단지 이 군인들은 그냥 쓸고 지나갔어요. 그냥 무서우니까 거기서 투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쓸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그 기화로 인해서 인민위원회가 다시 활성 돼서 이 여수, 순천 그리고 전라도 지역의 전체 인민들이.



    김어준 : 선생님, 한 주 더 나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김용옥 : 해방고가 된 거예요, 그게 그 당시에. 그러니까….



    김어준 : 나머지 얘기는 다음 주 목요일 날 다시 뵙겠습니다.



    김용옥 : 그렇게 할까요? 목요일 하루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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