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리포트①] 서울 곳곳에 ‘친일파 기념물’ 이대로 둘 것인가

최경진

tbskj33@seoul.go.kr

2017-12-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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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광복 72주년이 넘었지만
    일제 강점기의 잔재는 여전합니다.
    학교, 공공지 등 서울시 곳곳에도
    ‘친일파 기념물’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친일파 기념물은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친일 행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
    [PD]
    최근 이화여대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동상이 있습니다.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장 겸 초대 총장을
    지닌 ‘김활란’의 동상입니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친일단체 등에 참가하고,
    징병제 및 황국 여성으로서의 사명을 강조하는
    행적으로 인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입니다.

    때문에 김활란의 친일 행적을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이대 재학생이 중심이 되어 ‘김활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인터뷰]
    <김예원 /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
    김활란 동상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친일파의 동상이 학교 내에 버젓이 있는 것은 많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서 친구들을 모았어요.

    기획단 학생들은 지난 11월 13일 김활란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팻말을 세웠지만 학교 측은 학교측은 팻말의 강제 철거를 강행했습니다.


    <인터뷰>
    <문채린 /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
    그때도 절차를 얘기하면서 동상에 김활란 박사라고만 쓰여져 있는 것은 각자 성찰(판단)을 하라는 의미인데, 팻말을 세우면 ‘각자의 판단을 할 수 없다’라는 이유도 함께 이야기 하면서 저희에게 자진철거 할 것을 요청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자진철거 할 수 없음을 밝혔고...

    [PD]
    친일파.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가담해
    그들의 침략과 약탈정책을 지지하거나
    추종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신 이화여대 김활란 동상 같은
    '친일파' 기념물이 학교,
    그리고 서울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에 있는 이 비석도
    친일파 시인 주요한의 시비입니다.
    화려한 약력이 기록되어 있지만 친일 행적은
    단 한줄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는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이 함께 서있습니다. 조선어학회 학자 33인은 우리말 말살정책을 펼치던 일제에 검거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으면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했던 인물들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의 기념물이 친일파 기념물과 나란히 세워진 것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습니다.

    [시민 인터뷰]
    <홍석근 / 서울시 양천구>
    친일파라는 게 일단 안 좋다는 느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있는 것 아니겠어요?
    <홍석근 / 서울시 양천구>
    그런 것에(친일파 기념물이 함께 있는 것)대해서 저는 반대에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가 그 분들이(독립운동가) 있음으로 해서 발전했고... 그런 걸(친일파 기념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같은 사례가 또 있습니다.
    중랑구 망우묘지공원.
    이곳은 만해 한용운, 조봉암 등 독립운동가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친일파 장덕수의 묘가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도심 속 테마공원으로 자리 잡은 이곳에는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하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썼던 김동인 문학비가 있습니다.
    이 문학비 또한 그의 친일행적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청소년들에게 이 흉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이영은, 서은지 / 동대부속여고>
    Q. 김동인 문학비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뭔가 훌륭한 일을 했으니까 이런 동상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김동인의 친일내용을 말해준 후 소감을 다시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이영은, 서은지 / 동대부속여고>
    친일 행동을 한 사람인데 여기에 제대로 된
    내용도 안 쓰여있고 아무리 학생들도 역사에
    대해 배웠어도 저렇게 (친일 행적에 대해)
    자세하게 까지는 안 배웠을 것 같아서...

    최근까지 확인된 친일파 기념물과 기념사업은 전국에 200여 개.
    지난 2015년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이 중 정부 소유 건물과 공공시설에 설치된
    친일파 기념물은 전국적으로 37개,
    이 중 서울에만 10개에 달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수조사가 이루어진 수치가 아닌 만큼 추후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기념물들이
    ‘친일파 기념물’로 판단되는 근거는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토대로 설립되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파 인물 1,006명을 규정한데에 기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원웅 전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참여했고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를 설립하여 활동해 왔습니다.

    [인터뷰]
    <김원웅 /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前회장>
    2004년에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서 2009년까지 진상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증거가 확실한 1,006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렇게 선정된 1,006명에 대한 기념물은
    친일파 기념물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청산과 관련된 단체나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친일파 기념물을‘철거 해야한다, 혹은 친일행적을 알리는 단죄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서로 상충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친일파 기념물 철거는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현재는 철거를 위한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뚜렷한 관련법이나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11월 19일부터
    [서울특별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의 기준에 따라 공공미술 관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조례를 시행하고 있지만,
    철거를 위한 직접적인 명시보다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며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심의를 요청하거나 심의를 권고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고, 문제 제기를
    통해‘미술작품심의위원회’를 구성한 뒤
    관련 작품의 교체 및 철거를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황평우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공공미술이라는 조례의 개념을 어디에 뒀느냐... 공공성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이냐, ‘사회적 합의를 이룬 공공성’이런 목적과 정의가 들어가고 세부적으로 근현대사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는 전문가가(위원회에)있느냐...
    그래서 서울시 조례는 한계가 많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철거가 어렵다면 친일행적을 알리는
    ‘단죄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윤치호, 이범익, 홍난파, 이두황 등
    민족문제연구소와 민간 주도로 친일파 기념물 옆에 단죄비를 함께 세우는 작업이 계속해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전국의 친일파 기념물 중 단죄비가 설치된 곳은 7곳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임헌영 / 민족문제연구소장>
    그 옆에 친일 행적을 했다는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기념비나 문자판을 설치한다는 것은
    지금 현실적 법으로는 위법이기 때문에
    그런(단죄비 설치에 대한) 법에 대해서도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철거를 하느냐.
    역사의 기록물로 삼느냐.

    ‘친일파 기념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고 맞는 것인지, 그 방법을 두고 아직도 사회 속 논쟁은 뜨겁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논쟁들은 친일청산을 위한
    견고하고도 계획적인 우리 사회의 가이드라인이 아직까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자,
    단죄비로서 남기고”
    “국민 정서적 차원에서, 역사적폐청산의 차원에서, 세계 일류 평화의 차원에서 정리를 해야만...”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려면 친일청산을 해야 돼요”

    광복이 된지 7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친일청산은 멀고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잘못된 역사의 흔적들을 바로잡고,
    국민들의 불필요한 논쟁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정부나 지자체의 의무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할 때입니다.

    tbs 최경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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