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홍구 교수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 역사적 의미는?"

지혜롬

tbs3@naver.com

2018-04-19 10:59

프린트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어준의 뉴스공장
  •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2부



    [인터뷰 제 2 공장]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 역사적 의미는?

    -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김어준 : 정전협정, 평화협정으로 전환된다.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저희가 역사 한번 또 짚어보겠습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한홍구 :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요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사건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자주 나오고 계십니다, 불시에. 사실 저희도 쭉 준비했던 게 아니라 어제 갑자기 튀어나와서, 어제 저녁에 갑자기. 강연을 지금 제치고 오신 것 아닙니까?



    한홍구 : 아침에 조찬회의가 있는데 못가고 왔습니다.



    김어준 : 아침부터 학자들도 회의를 합니까?



    한홍구 : 어쩌다 한 번…….



    김어준 : 정전협정 당시로 되돌아가서 그때 왜 우리는 왜 못 꼈는지, 그리고 왜 휴전을 한 건지. 3년 전쟁하고 사실 전쟁 끝났으면 종전해야 되는데. 그 사항 좀 정리해 주십시오.



    한홍구 : 우선 아이들 싸움 할 때도 싸움이 끝나는 게 싸우다가 지쳐서 ‘아이고, 우리 그만두자.’ 하는 경우는 별로 없죠. 사실은 누가 코피가 터진다든지 먼저 운다든지, 이렇게 해서 한쪽이 져서 싸움이 끝나는 건데, 이거는 3년 동안 치고 박고 싸우는데 군사적으로는 무승부였단 말이에요.



    김어준 : 그렇죠. 가운데에서 멈췄죠.



    한홍구 :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완전히 한쪽의 승리에 의한 보통의 전쟁의 종결, 이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정전이라는 임시적인 선택으로 남겨놓고 형식은 3개월 후에 정치회담을 열어서 정치문제를 마무리 짓자고 했지만, 그게 유명한 제네바 회의인데 거기서 제대로 될 리가 없었죠. 그리고 전쟁을 끝낼 수 없는 바에야 냉전으로 돌아가서 오히려 한반도 분단체제를 완전히 만들어 놓고, 미국 입장에서도 그렇고 소련 입장에서도 그렇고 전 세계적인 냉전체제를 유지하려면 화로에 불씨가 꺼져서는 안 된다. 여름이라도 불씨는 보존을 해야 되니까 한반도가 그렇게 남게 된 거고요. 한국은 못 들어간 게 아닙니다. 안 들어간 겁니다.



    김어준 : 그래요? 정확하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한홍구 : 그게 이승만 전 대통령의 특별한 전략이었는데, 우리가 지금은 어떤 문제에서 한국이 빠지고 그러면 ‘코리아패싱이다.’ 그런 말을 쓰고, 전에는 노재봉 전 총리 같은 분은 ‘통미봉남’ 미국하고 통하고 한국을 봉쇄했다 하는 그런 말을 만들어서 쓰고 그랬는데, 사실 통미봉남이나 코리아패싱을 만든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에요.



    김어준 : 그건 어떻게 된 사연인지 설명 좀 해 주십시오.



    한홍구 :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게 불만이었고, 또 불안했던 거죠. 그리고 미국이…….



    김어준 : 원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침 주장하던 분 아닙니까.



    한홍구 : 그래서 정전협정에도 참여 안 하고 ‘우리는 계속 북진통일을 하겠다.’ 그래서 정전협정 자체를, 휴전 없는 통일을 결사반대. 미국에서 유명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바꿔서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래서 여고생들, 상이군인들 불러내서 데모하고 그렇게 하면서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김어준 :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침통일을 주장하던 분이고.



    한홍구 : ‘하던’이 아니라 ‘하고 있는.’



    김어준 : 그 당시에도 하고 있던 분이고, 그러다 보니까 미국의 힘으로 밀어붙여서 끝내야 하는데 여기서 왜 멈추냐고 불만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정전협정에 사인을 했었어야 되는 건데, 그게 단순히 연합사령부 산하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령관이 대신한 게 아니라 이승만 전 대통령 본인이 ‘나는 그거 인정 못해!’하고 안 들어왔다는 겁니까?



    한홍구 : 그렇죠.



    김어준 : 기분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인은 해 놓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한홍구 : 이승만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야 미국으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미국을 확실하게 붙잡아놓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김어준 : 아니, 본인이 사인을 안 하는데 어떻게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걸 얻어내는 거죠?



    한홍구 : 그러니까 한국의 작전지휘권은 미국한테 이양해 놨지 않습니까.



    김어준 : 그러니까요 작전지휘권을 줬는데.



    한홍구 : 그런데 미군이 지상군을 철수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또 북에서 다시 한 번 밀고 내려올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나올 수도 있고, 또 미국에 여차하면 자기를 축출해 버릴 수도 있고 하는 여러 가지 불안 상황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이승만은 일종의, 제가 이런 표현을 가끔씩 씁니다.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일종의 벼랑끝전술이죠. 벼랑끝전술의 원조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는데, 뭐냐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못 말리는 사람이니까 미국이 내 옆에서 말려줘야겠다.’ 그런 걸 보여준 게 정전협정의 판을 깰 수도 있는 큰 사건이 반공포로석방 아닙니까. 포로 문제가 쟁점이 돼서 싸우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석방을 해 버린 건데…….



    김어준 : 남북의 포로들을 각자 풀어주자는 협상을 하는 와중에 미리 풀어버린…….



    한홍구 : 네, 그렇죠. 정전협정의 판을 깰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인데 미국이나 공산 측이나 다 그냥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버렸죠. 그런데 그거는 그런 식으로 해서 미군을 한반도에다가 붙잡아 놓고, 대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작전지휘권은 미국이 갖고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못하게, 그런 구도를 만들어 놨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저는 정전협정의 저주받은 유산이라고 해서 한국이 그 이후에 어떤 문제가 생겼냐하면, 실제 분단의 당사자이고, 또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하게 싸웠던 입장이지만 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김어준 :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북한은 ‘정전협정에 사인도 안 했는데 남한은 할 말 없다. 우리는 미국하고 얘기할 것.’ 이라고 항상 그랬죠,



    한홍구 : 그야말로 애들은 가라, 이거였죠.



    김어준 : ‘사인을 안 했잖아.’ 맞는 말이거든요, 말 자체는.



    한홍구 : 통신논리상으로는 맞는데, 그렇지만 분단의 당사자임에는 틀림없고, 저는 그것을 6·15공동선언, 2000년도에 남북정상회담이 한국이 한반도의 분단의 당사자로서의 그 정치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거였고, 그걸 법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정전협정을 완전한 평화체제로 전환을 시켜야 할 과제가 있는 거죠.



    김어준 :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은 미국이 떠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전쟁 끝났으니까 작전권 회수해야 되는데 ‘이거 줄 테니까 여기 있으시오,’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군사주권을 넘겨주고 대신 당신들이 여기 있어 주시오.’



    한홍구 : 미국으로 하여금 도저히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 없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의 어떤…….



    김어준 : ‘안 그러면 나 북침해.’



    한홍구 : 예. 그 얘기죠.



    김어준 : 사실 북침할 능력은 없는데. 있으면 진즉에 했죠, 말만 할 게 아니라. 그런데 이제 ‘당신들이 군대 빼고 그러면…….’ 이런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군요. ‘미군이 빠지면 공산 쪽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



    한홍구 : 그러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는데, 그러니까 이게 같은 상호방위조약이라도 NATO형 방위조약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다른데요, 우리가 어렸을 때 공장장님도 친구하고 동맹 맺고 다 해 보지 않았습니까? ‘누가 날 때리면 네가 와서 도와 줘.’



    김어준 : 그런 동맹을 맺은 적은 없는데…….



    한홍구 : 그러세요? 평화적이었군요. 그런데 이제 그런 동맹을 맺었을 때, 쉽게 얘기하면 이겁니다. NATO형 방위조약은 몇 나라가 맺었는데 그중에 한 나라가 한 대 맞으면 전체가 다 맞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집단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겁니다, 자위권을 그대로 내가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근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어떤 식이냐면 내가 한 대 맞았을 때 ‘미국 도와 줘.’ 했을 때 미국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엄마한테 물어 보고,’ 하는 거죠.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제한조치를 둔 건 어떤 의미냐면, ‘한국이 가만히 있는데 이북이 쳐들어오면 그거는 막아 줄게. 그런데 만약에 이북이 가만있는데 이승만이 먼저 쳐들어 온 거, 그건 난 몰라’. 하는 식의 그런 제한을 뒀던 겁니다.



    김어준 : 그렇군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기 보존을 위해서 이런 전략을 취했군요.



    한홍구 : 예, 그렇습니다.



    김어준 : 실제 북침의 의지가 있었다면 미군 없이도 했겠죠. 그런데 이제…….



    한홍구 : 그건 능력이 안 되니까요.



    김어준 : 그건 능력이 안 되니까 실제 진짜 북침 주장의 목적은 ‘미군 당신들 떠나지 말고 날 좀 지켜 줘.’ 이런 이야기였군요. 그래서 군사작전권도 주고. 대신 이 휴전협정에는 떼쓰는 전략의 일환으로 안 들어갔다. 대단한……. 우리 입장에서는, 후손들 입장에서는 그 덕분에 고생을 참 많이 합니다.



    한홍구 : 그렇습니다.



    김어준 : 고생을 엄청 많이 하고…….



    한홍구 : 수모를 많이 당했죠.



    김어준 : 수모를 많이 당했죠. 군사작전권도 없고, 아직까지도 안 주는 것 아닙니까.



    한홍구 : 그런데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죠.



    김어준 : 이제는 달라졌습니다마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러면 그 이유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그렸던 군사작전권이라든가 또는 미군과의 관계 문제라든가, 그 그림이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는 거네요, 말하자면 큰 틀에서는.



    한홍구 : 이제 한국 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적어도 군사 정전협정체제라는 면에서는 그런데 이 체제 자체가 굉장히 불안정하고, 사실은 91년 이후에 군사 정전회담이 안 열리고 있습니다. 안 열린 지가 25년이 넘었어요.



    김어준 : 사실 전쟁이 끝났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70년 가까이 휴전협정이 아니라 정전을 선언하지 않은 전쟁은 없죠.



    한홍구 : 거의 없죠.



    김어준 :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다시 또 하면 몰라도, 전쟁 끝났다고 해 놓고 또 쳐들어와서 싸우면 몰라도……. 70년 동안 잠시 쉬자, 이거 아닙니까. 잠시 쉬자.



    한홍구 : 정전하고 휴전이 많이 통용이 됩니다만 조금 다를 수가 있는데, 사실 원 문서에는 정전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휴전이란 말을 훨씬 더 많이 써 왔었는데요.



    김어준 : 잠시 멈추자는 의미로.



    한홍구 : 예. 최근에 와서 정전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데, 휴전은 뭐냐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거죠. 잠시 쉬는 거니까. 언제든지 개전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거죠.



    김어준 : 그러니까 보통 영화 같은 데 보면 크리스마스고 서로 큰 행사니까 ‘우리 좀 쉬었다 하자.’이럴 때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역사적으로. 잠시 휴전을 하는 거죠. 그런 맥락으로 긴 휴전일 뿐, 하지만 길게 70년을, 7일도 아니고…….



    한홍구 : 사실은 이런 상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전쟁이 끝나는 게 평화가 오고 전쟁이 끝나고 하면 모든 사람이 좋아할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은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김어준 : 싫어하는 사람은 교수님이 보시기에 어떻게 꼽으십니까?



    한홍구 : 가령 무기 팔아먹는 사람.



    김어준 : 그 사람들은 싫겠죠, 전쟁 끝나면.



    한홍구 : 가령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2차대전이 일찍 끝났거든요. 미국의 무기산업 입장에서는 저 전쟁이 한 3년은 더 가서 엄청나게 호황이 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뚝 끝나버렸어요. 소련이 참전하고 난 다음에 일본이 예정에 없이 빨리 항복을 해 버리니까 엄청난 재고가 쌓였는데, 그것이 한국전쟁 발발의 또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김어준 : 재고가 많아서.



    한홍구 : 재고처리로



    김어준 : 군수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찬스가 온 거군요.



    한홍구 : 사실은 정전협정을 오래 끈 것도 저는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어준 : 정전협정은 1년 이상 끌지 않았습니까? 2년 가까이 들었나요?



    한홍구 : 현재 휴전선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정전협정이 시작이 됐거든요. 그런데 2년 동안 끌었고 그 사이에 앞의 1년, 그 1년이 전선이 막 이동하는 그런 격렬한…….



    김어준 : 그렇죠. 낙동강까지 갔다가 압록강까지 갔다가 왔다갔다하는…….



    한홍구 : 그런데 폭탄 소비량은 휴전선에서 땅 따먹기 싸움 한, 이른바 고지전을 벌였었던 그 시기에 군인들은 더 많이 죽고, 그리고 폭탄 사용량도 더 많았습니다.



    김어준 : 군수업자들은 당연히 싫어할 것이고, 그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지금도 미국 군수업자들은 북미수교하는 걸 싫어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전쟁이 나야, 날 것 같아야 무기를 팔아먹으니까.



    한홍구 : 아니요, 그런데 이제 그게 꼭 한반도여야 할 건 아니죠.



    김어준 : 다른 데 갈등을 만들어 내거나.



    한홍구 : 그러면 미국 입장에서는 북이 핵을 가졌기 때문에, 단순히 핵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 운반수단인 ICBM을 개발했기 때문에 미국 본토가 위협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됐기 때문에 뭔가 타결이 필요하다, 그런…….



    김어준 : 일반적인 군수산업의 논리가 적용이 안 되기 시작한 거죠. 지금 저희가 40초밖에 안 남았는데…….



    한홍구 : 정전협정에서 포로 문제 갖고 싸웠는데요, 사실은 좀 심하게 얘기하면 한 글자 가지고 싸웠습니다. 자유송환이냐 자동송환이냐.



    김어준 :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한홍구 : 자유송환은 포로의 의사를 물어서 보내는 거고, 자동송환은 ‘포로는 무조건 원국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그 논리가 미국이 2차대전의 경험 속에서 자동송환 원칙을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집어넣는데, 첫 번째 전쟁이 한국전쟁에서부터 미국이 입장을 바꿔서 자유송환을…….



    김어준 : 왜 그랬습니까?



    한홍구 : 미국이 17 대 2로 싸운 것 아닙니까. 전설적인 그 싸움에서 군사적으로 비겼으면 사실은 정치적으로 패배한 거죠.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tbs3@naver.com / copyrightⓒ tbs.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페이스북 링크

더 많은 기사 보기

개인정보처리방침  l  영상정보처리기기방침  l  사이버 감사실  l  저작권 정책  l  광고 • 협찬단가표  l  시청자 위원회  l  정보공개

03909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31 S-PLEX CENTER | 문의전화 : 02-311-5114(ARS)
Copyright © Since 2020 Seoul Media Foundation TB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