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누리 교수 "독일, 통일 준비한 적 없어"

조정문

tbs3@naver.com

2019-11-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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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 맞잡은 남북 정상 <사진=연합>
두손 맞잡은 남북 정상 <사진=연합>
  • *내용 인용시 tbs <김지윤의 이브닝쇼>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9. 11. 20. (수)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지윤 박사

    ● 대담 :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안톤 슐츠 독일 PD&기자



    - 과거, 독일 내에서 '통일'은 금기어

    - 남과 북, 서독과 동독보다 경제적 격차 더 커

    - 70% 이상의 동독인들 2등 시민이라 느껴

    - 독일 전체 대학 정교수 중 5%만이 동독 출신



    ◑ 김지윤 : 베를린을 동과 서로 갈랐던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진 지 어느 덧 30주년이 됐습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이제는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되었는데요.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인 올해 그동안 독일은 어떻게 변했는지, 또 독일의 통일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와 그리고 안톤 숄츠 독일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안톤 숄츠 : 안녕하세요.



    ▷ 김누리 : 안녕하세요.



    ◑ 김지윤 : 두 분 서로 아세요, 혹시?



    ▷ 김누리 : 네. 잘 알고 있습니다.



    ◑ 김지윤 : 잘 아세요, 심지어.






    ▶ 안톤 숄츠 : 몇 번 인터뷰도 하고, 여기저기 만났어요.






    ◑ 김지윤 : 그렇군요. 지난 토요일로 제가 기억을 해요. 11월 9일 그래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다 해서 여러 가지 기념식들 많이 하더라고요. 또 메르켈 총리 나와서 굉장히 연설도 인상적으로 했고, 그 당시 어디 계셨는지 제가 궁금해요, 89년.



    ▶ 안톤 숄츠 : 89년 저는 그때는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죠. 그래서 그때 되게 좀 재미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냥, 그냥 믿을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어떤 영화처럼 같은 느낌 있었는데, 매일 신문 읽어보고, 또 어떤 새로운 뉴스가 나왔어요, 갑자기. 그래서 이 과정, 사실 이 통일, 그 벽 무너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 전에는 이런 과정이 있었잖아요. 이건 딱 하루해서만 통일되는 게 아닌데요. 그런데 너무 신기하고, 믿지 못 하는 약간 이상한 꿈같은 이야기였는데요.






    ◑ 김지윤 :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되게 신기하고 믿지 못 했다는 이야기인데, 교수님 혹시, 김누리 교수님 그 당시에 어디 계셨어요? 베를린 계셨어요, 혹시?



    ▷ 김누리 : 저는 베를린은 아니고요. 브레멘이라고 북쪽인데요. 그때 제가 이제 89년에 박사를 공부하겠다고 갔는데, 그 해에 제가 딱 유럽에 떨어지니까 유럽 전체가 막 진동을 하는 거예요.






    ◑ 김지윤 : 그때 뭐 다들 그랬죠. 동구권이 무너진다 그러고.



    ▷ 김누리 : 그렇죠. 그래서 저는 아무튼 하여간 그 과정을 직접 베를린에 가지는 않았지만 주로 TV를 통해가지고 거의 뭐 매일 하루 종일 그걸 보면서 쫓아간 거죠.



    ◑ 김지윤 : 그렇구나. 저는 사실 두 분 나오시면 이걸 여쭤보고 싶었어요. 이게 진짜인지. 오보에서 시작됐다라는 얘기, 정말이에요? 그게 뭔지, 루머 같기도 하고 그런데.






    ▶ 안톤 숄츠 : 조금, 사실 제가 얼마 전에 학생들한테 약간 저널리즘 관련된 발표 좀 했는데, 그래서 오보는 정말 요새는 제일 큰 문제인데, 가끔 오보가 좋은 결과 있을 수도 있다고 말씀했는데, 내가. 그래서 왜냐하면 89년 귄터 샤보스키 사실 대변인이었어요.



    ◑ 김지윤 : 샤보스키, 동독의 대변인이었죠.






    ▶ 안톤 숄츠 : 동독 대변인. 새로운 앞으로 우리는 법을 좀 바꿔야 된다고 이런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 나중에 앞으로는 우리나라 국민들 원하면 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기자가 저기 대변인 죄송하지만 그런데 그거 언제부터에요? 언제 시작하는 거예요, 그 법을? 그래서 계속 서류 보고, 글쎄요. 언제지, 약간 이런 상황이었는데, 나중에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 바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건 사실 오보였어요. 왜냐하면 원래는 그날부터 시작하는 예정 아니었는데, 그런데 독일 사람들, 동독 사람들 다 이거 TV서 직접 봤으니까, 그래서 라디오 통해서도 많이 들어봤고, 바로 사람들 싹,



    ◑ 김지윤 : 장벽으로 몰려갔구나.






    ▶ 안톤 숄츠 : 장벽으로 갔는데, 그래서 거기 군인들 아무 명령 안 받았잖아요. 그래서 군인들 이거 사실 전체 통일 이야기는 제일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왜냐하면 그 순간에서는 사실 군인들 그냥 두 가지 선택만 있어요. 문 열고 나가라고, 아니면 그냥 총 쓸 수밖에 없는,



    ◑ 김지윤 : 진압을 하든지.



    ▶ 안톤 숄츠 : 그런데 다행인 게 그 순간에서 그냥 군인들 명령 없었어도 그냥 문 열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통일됐어요.






    ◑ 김지윤 : 그러니까 여행 자유화 조치가 그 당시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동독 사람들이 서독에 가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조치, 그걸 열어준다고 얘기를 한 건데, 이 사람이 제가 알기로는 휴가 갔다 와 가지고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고 있다가 아마 지금부터일걸? 그랬는데, 그게 이태리 기자가 그걸 보고 타전을 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게 또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독일로 오고, 하여튼 이래 가지고 그 오보 덕분에 다 몰려가서,






    ▷ 김누리 : 제가 그때 저는 그런 상황들을 그때는 이제 독일에서는 브렌풍크트라고 해 가지고 계속 그런 속보, 긴급속보를 계속 테레비에서 했어요. 그러니까 그 상황도 바로 했어요.



    ◑ 김지윤 : 보셨구나.



    ▷ 김누리 : 저는 그걸 봤어요, 그 앞에서. 바로 봤는데, 결국은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죠. 나흐 마이너 켄트니스(nach meiner Kenntnis), ‘내 생각으로는’



    ◑ 김지윤 : 내 생각으로는.



    ▷ 김누리 : ‘지금 즉시’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얘기죠. 그런데 ‘지금 즉시’는 메모에 써있었던 거예요. 지금 즉시는. 그런데 지금 즉시 여행 자유화 조치를 알리라는 거였는데, 그게 시행된다는 걸 알리라는 거였는데, 이 사람은 지금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발표가 된 거죠. 그러면서 그 다음에는 대책이 없었던 건데.



    ◑ 김지윤 : 대책이 없었던, 다 몰려가니까. 그런데 참 다행이에요. 유혈사태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독일이 통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는데, 사실 이제 아까도 잠깐 얘기를 했었지만 이게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독일이 어떻게 보면 준비를 한 거잖아요. 마지막에는 그렇게 막 물밀듯이 갔다고 하더라도. 독일이 통일되는 걸 바라지 않는 국가들은 주변에 너무 많았잖아요. 특히 프랑스, 그걸 어떻게 다 설득을 했었는지, 독일이.






    ▷ 김누리 : 그러니까 그것은 오랫동안 준비한 것 아니고요. 독일은 통일 준비한 적이 없어요.



    ◑ 김지윤 : 정말요?



    ▷ 김누리 : 네. 전혀 없고요. 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였어요. 독일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면 주변 국가들이 워낙에 그야말로 경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 이제 그건 독일 역사를 조금 들여다보면 금방 볼 수 있는 거죠. 1871년에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통일이 되고, 45년에 또 다시 분단되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통일국가로 있었던 게 74년밖에 안 돼요.



    ◑ 김지윤 : 그러네요.



    ▷ 김누리 : 그런데 그동안에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 김지윤 : 전범국이 되고,



    ▷ 김누리 :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주변 국가에서는 다 반대를 했고요. 그래서 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우리는 통일부라고 하지만 사실은 독일에서는, 우리 통일부라고 번역을 하지만 잘못된 번역이에요. ‘미니스테리움 퓌어 인너노이체 베찌웅’(Ministerium fur Innerdeutche Bezieung), 내부 독일간의 관계를 관장하는 부서, 이런 의미인데, 통일이라는 말을 일부러 피한 거죠.



    ◑ 김지윤 : 왜냐하면 옆에 국가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니까 일부러 통일이라는 말을 쓰지를 못 했다.






    ▷ 김누리 : 그렇죠.



    ◑ 김지윤 : 어땠어요?



    ▶ 안톤 숄츠 : 그러니까 사실 우리 운이 되게 좋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왜냐하면 주변 나라 그때도 고르바초프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토로이카, 완전히 그냥 우리 옛날부터 해왔던 이런 러시아 이미지가 좀 깨지고, 그래서 소련도 점점 없어지고,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 있었고, 그래서,






    ◑ 김지윤 : 아버지 부시입니다.



    ▶ 안톤 숄츠 : 네. 아버지 부시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 독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정도 약간 어떤 새로운 세상 시작한다고 많은 사람들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나중에 거의 통일의 노래됐던 스콜피언스 노래도 있잖아요.



    ◑ 김지윤 : Wind of Change.



    ▶ 안톤 숄츠 : 약간 전 세계 사람들 어떤 변화가 있어요. 냉전 없어지고, 우리 세상 새로운 평화로운 세상 만들 수 있다. 약간 이런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그것 때문에 사실 그때는 콜 총리 엄청 많이 다른 지도자들 하고 유럽하고 미국, 러시아, 다 엄청 많이 얘기하고, 오케이. 우리나라부터는 1차 대전도 시작했고, 2차 대전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건 정말 역사다. 우리 지금 다른 민족, 다른 나라 됐다. 우리 평화 좋아하는 나라 됐고, 그래서 다른 국가들, 그냥 어느 정도 믿었어요. 그래서 이건 어느 정도 콜,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우리는 믿게 만들었고, 그래서 결과는 우리나라 통일됐고.






    ◑ 김지윤 : 주변국들이 독일을 신뢰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는 얘기인데, 제가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정치학자들끼리. 만약에 북한이 이런 약간 독재적인, 세습 독재체제가 아니라 정말 전형적인 사회주의국가였다면 그 당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동구권이 무너지는 그런 바람을 북한도 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해서 아쉬운 마음에 얘기를 해봤습니다. 지금 독일 이야기를 좀 해봐야 될 것 같아요. 30년이 지났어요. 독일 사회가 굉장히 많이 변화를 겪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변화, 독일인으로서 뭐라고 생각하세요?






    ▶ 안톤 숄츠 : 저는 어렸을 때 항상 저의 모든 인생 제일 무거운 건 약간 전쟁에 대해서 두려움,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항상 옆으로 러시아하고 동독이 있으니까 항상 우리도 거의 군대 그때는 2년 반, 3년 정도는 군대 젊은 남자들 되게 길게 갔는데,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부모님한테 물어봤어요, 저는. 만약에 전쟁 시작하면 우리 빨리 어디 도망갈 수 있냐, 이런 두려움 저희 인생에서 정말 되게 무거운 그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요새는 젊은 사람들 이런 두려움 없잖아요, 사실. 그리고 사실 재미있는 게 독일에서는 이런 글로벌 해피니스 랭킹 있는데, 독일 요새는 제일 행복한 나라 중 하나인데, 특히 지난 10년에서는 제일 빨리 행복해졌던 나라는 바로 전 세계에서는 1등 독일인데, 그래서 그런 것 보면 사실 결과는 사람들 옛날 이런 무거움 좀 없어지고, 그리고 더 행복한 나라 됐어요.






    ◑ 김지윤 : 그러니까 평화로워지고, 안전하게 느끼고 행복해졌다는 얘기. 우리가 이제 한국 통일 이야기를 하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됐으니까 독일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교수님. 독일도 그 당시 경제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났는데, 우리가 되겠냐.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 어떻게 보세요? 경제력의 차이 혹은 경제적인 문제가 통일에 있어서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까요?



    ▷ 김누리 : 사실은 우리가 훨씬 더 독일과 비교해보면 경제적인 격차가 크죠.



    ◑ 김지윤 : 그렇죠.



    ▷ 김누리 : 사실은 대부분의 지금 북한 관련된 정보라는 게 어느 정도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상당히,



    ◑ 김지윤 : 믿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 김누리 : 믿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체로 지금 어느 정도 규모의 차이가 있느냐 얘기를 하면 40대1 내지 70대1 정도를 얘기하니까 대체로 한 50대1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 김지윤 : 독일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났었나요?



    ▷ 김누리 : 독일은 그 정도 아니었죠. 독일은 당시에 또 동독이 굉장히 잘 살았고, 70년대 동독은 동구권의 모범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련보다 잘 살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대체로 그 무렵에 동방정책을 펼 때, 그때 한 6배, 7배 정도 차이지,



    ◑ 김지윤 : 비교가 안 되네요.



    ▷ 김누리 : 우리처럼 60배 차이가 아니었던 거고요. 그런데 어쨌든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반공국가고, 사실은 반공국가도 아니죠. 반북국가죠, 반북. 그런 국가고, 북에 대해서 너무나 오랫동안 증오심이라는 게 쌓여 가지고, 지금 사실은 한 국가의 통일정책이 일개 신문의 구호에 따라서 이런 식으로 좌절되는 것은 아마 전 세계에 역사도 없을 거예요. 조선일보가 퍼주기, 하는 순간 모든 대북 관련된 지원이 중단되는 그런 역사를 반복해왔거든요. 정말 사실은 남의 통일정책이라는 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죠.



    ◑ 김지윤 : 그렇군요. 그런데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30주년이 되니까 언론에서 그런 얘기를, 외국 언론에서 많이 하더라고요. 현재 독일, 그러니까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실 굉장히 중요한 건 서로 사회적으로 아직 통합을 이루지 못 했다는 의견들이 많더라고요. 특히 동독 주민들, 동독 출신 주민들이 38% 정도밖에 통일이 성공적이었다고 응답을 안 했다. 40대 이하 같은 경우 20%밖에 안 되고, 그리고 뭔가 세컨 티어 시티즌이라고 얘기하죠. 2등 시민처럼 느낀다는 대답이 57% 그리고 지금 사실 얼터너티브 포 도이칠란드(AfD)라고 하나요? 극우정당이죠.



    ▶ 안톤 숄츠 : 네. 맞아요.



    ◑ 김지윤 : 동독 지역에서 인기 많잖아요, 서독보다.



    ▶ 안톤 숄츠 : 20% 이상 거의 받았어요, 최근에서는.






    ◑ 김지윤 : 그러니까 심상치는 않다는 얘기 많이 해요. 어떻게들 보세요?



    ▶ 안톤 숄츠 : 그건 사실 누구한테 물어보는지 좀 차이가 있어요. 사실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해피니스 랭킹에서는 독일사람 해피하고, 그래서 행복하면 그건 문제는 어느 정도 통일의 결과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리고 지금 독일 사람 최근한테 다른 조사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정말 한 나라 됐는지, 얼마나 믿고 있는지, 그래서 대충 한 50% 정도 한 나라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별로 좋은 숫자 아니지만, 30년 됐는데, 그런데 좋은 건 젊은 애들한테 물어보면 60%, 65% 정도, 3분의 2 정도는 한 나라 됐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쉽게 말하면 시간 걸려요. 그래서 젊은 이런 통일됐던 나라에서 태어났던 사람들, 더 강하게 우리 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가면 더 이런 느낌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까도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아직도 경제적인 차이가 생각보다 커요, 사실. 아직도 예를 들어서 제일 부자들 500명 정도 보면 20명밖에 동독 안 살아요. 그리고 제일 잘 되는 도시, 경제적으로 되는 20개의 탑 독일 도시 딱 하나만 동독이 있어요. 지금 옛날 동독에 있었던,



    ◑ 김지윤 : 경제 차이가 좀 나는군요.



    ▶ 안톤 숄츠 : 네. 경제 차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도 아까 AfD, 이런 당 약간 힘 좀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 계속 하면서 왜 우리는 그때는 많은 약속 받았는데, 그런데 제대로 되지 않았잖아요.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된다. 약간 이런 거 있는데,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 김지윤 : 극복될 거다.






    ▶ 안톤 숄츠 : 네. 그렇게 간단한 일 아니고, 그리고 잘되면 AfD 점점 없어질 것 같아요.



    ▷ 김누리 : 조금 이제 낙관적으로 보시는 거고요. 저는 그것보다는 조금 비관적으로 보는데요. 지금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한 30, 40% 정도밖에 통일이 성공적이다라는 평가가 없다는 것, 그건 대체로 제가 본 자료들이랑 비슷하고요. 아까 두 번째로 2등 시민으로 느낀다는 동독 사람들 수치는 최근에 나온 건 그것보다 훨씬 높아서 굉장히 충격적이에요. 최근에 튀딩엔이라는 주에서 선거를 했는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때 이제 여론조사 한 것 보면 70%가 넘어요. 굉장히 충격적인 거예요. 지금 한 세대가 지났는데, 70% 이상의 동독인들이 우리는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는 건 충격적인 거고요. 그다음에 예를 들면 사실은 서독에 의해서 동독 지역이 장악되는 과정이 일종의 식민화였어요. 학문분야만 제가 하나 예를 들면,



    ◑ 김지윤 : 시간이 저희가 없어 가지고, 교수님.



    ▷ 김누리 : 네.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동독, 독일 전체 대학에서 동독 출신 총장이 1명도 없어요. 그다음에 독일 전체 대학의 정교수 중에서 동독 출신 5%밖에 안 돼요. 거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 김지윤 : 아직도 이렇게 많은 차별, 어떻게 보면 그런 게 있어서 힘들다.



    ▶ 안톤 숄츠 : 적어도 우리 총리는 동독 출신이잖아요.



    ▷ 김누리 : 맞습니다. 그건 맞아요.



    ◑ 김지윤 : 총리는 동독 출신이에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하버드대학교에 알레지나 교수라고 있는데, 이 사람이 역사의 상처를 잊기 위해서는 그 2배 되는 시간이 화해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한 40년 떨어져 살았으니까 80년 정도 있어야지 극복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 통일, 우리나라 통일 대한 이야기는 저희가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서 두 분을 모셔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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