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공작’ 실제인물 흑금성을 만나다] “내가 겪은 영화 밖 이야기”
전 대북공작원 박채서 씨와 김당 UPI 선임기자<사진=연합뉴스>
전 대북공작원 박채서 씨와 김당 UPI 선임기자<사진=연합뉴스>

[영화 ‘공작’ 실제인물 흑금성을 만나다] “내가 겪은 영화 밖 이야기”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8. 23. (목)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전 대북공작원 박채서 씨, 김당 UPI뉴스 선임기자


◐ 김종배 : 우리 애청자 여러분 아마 기억하고 계실 텐데요. 저희가 일전에 대북공작원이었던 박채서 씨를 모시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마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때 인터뷰 시간이 좀 짧아서 너무 아쉽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모시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 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저희가 인터뷰를 다시 추진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로 잡았는데 또 공교롭게 태풍이 북상을 하고 있어서 저희가 좀 고민을 했는데요. 그래도 어렵게 잡은 시간이기 때문에 인터뷰는 그대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 주인공, 박채서 씨를 저희 스튜디오로 다시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채서 : 네, 안녕하십니까.

◐ 김종배 : 그 동안 엄청 바쁘셨죠. 인터뷰 많이 하셨다고.

▷ 박채서 : 아니. (웃음)

◐ 김종배 : 자, 그리고 오늘 특별한 분을 한 분을 더 모셨습니다. 지금 이 ‘공작’이라고 하는 영화가 지금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이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같은 제목, 그러니까 ‘공작’이라고 하는 똑같은 제목의 책이 출간이 됐는데요. 바로 이 책, 『공작』을 쓴 저자 이십니다. 김당 UPI뉴스 정치선임기자도 함께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당 : 네, 반갑습니다.

◐ 김종배 : 일전에 한 번 저희가 모시고 인터뷰를 했었는데 기억하시죠?

▶ 김당 : 네, 시크릿파일 국정원 가지고 했죠.

◐ 김종배 : 맞습니다. 안보 전문 기자이시고요. UPI뉴스로 가셨네요.

▶ 김당 : 7월부터 출근하고 있어요.

◐ 김종배 : 그러셨군요. 근데 그러니까 우리 김당 기자께서 박채서씨의 어떤 수기, 그 다음에 증언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듣고 보고 하셔 가지고 책 ‘공작’을 펴내게 되신 거잖아요?

▶ 김당 : 네.

◐ 김종배 : 그 이전에 관계가 있었고 박채서 씨께서 이제 이런 말씀, 그러니까 유일하게 믿는 기자다, 이런 말씀까지 하셨던데, 어떻게 그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되신 거예요?

▶ 김당 : 1996년부터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96년도에 이른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있었습니다.

◐ 김종배 : 네, 있었어요.

▶ 김당 : 그런데 그걸 계기로 해서, 그때 김영삼 정부 시절인데 그 대북 민간교류를 전부다 봉쇄를 했거든요. 그러면서 정부가 물밑으로는 밀가루를 대기업을 통해서 지원을 했었어요.

◐ 김종배 : 그랬었어요?

▶ 김당 : 네, 그래서 그런 이제 팩트를 가지고 당시 <시사저널>에서 보도를 했는데

◐ 김종배 : 그때 시사저널 기자이셨을 때?

▶ 김당 : 네, 근데 이제 그 당시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때 비서실장이 소송을 걸었어요. 이게 사실이 아니다.

◐ 김종배 : 오보다.

▶ 김당 : 네, 그래 가지고 그걸 계기로 해서 저희가 이제 청와대하고 말하자면 어떻게 보면 전쟁 비슷하게 시작이 된 거죠. 근데 그런 와중에 그게 국회에서 막 문제가 됐거든요. 그 때 한참 예산결산특위가 열려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예결위가 공전이 됐어요.

◐ 김종배 : 오, 큰 사건이었나요?

▶ 김당 : 네, 그 사건화가 크게 됐죠. 그런 와중에 이제 박채서 씨가 저희 시사저널로 전화를 해 주셨어요, 그때.

◐ 김종배 : 그래요?

▶ 김당 : 네, 저는 그때 실무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대책위의. 그런데 저하고 연결이 됐었고 그때 첫 통화가 계기가 돼 가지고 그 이후에 쭉, 20여 년 동안 신뢰할 만한 취재원 또는 기사에 가끔 미스터 큐라는 형식으로 큐 씨라고 제가 쓰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오래됐죠.

◐ 김종배 : 네, 박채서 씨 왜 그때 전화를 하셨습니까?

▷ 박채서 : 그때는 제가 공작부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었어요. 그때 미국 측과 같이 근무하면서, 그런 미국 측으로부터 첩보를 제가 입수했거든요. 근데 그것은

◐ 김종배 : 밀가루 보냈다는 첩보를.

▷ 박채서 : 네, 미국이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한 팩트를 제가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저도 이제 뭐 혈기방장할 때니까, 그 젊은 기자들이 그 최고의 권부하고 피 튀겨서 진실 갖고 싸우는 것 보니까 어떤 용기는 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용기를 가지고 해라, 그러 의미에서 내가 그냥

◐ 김종배 : 인연은 인연이네요, 두 분. 그래서 그러면 그때부터 96년부터 이제 맺어온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거고?

▶ 김당 : 그렇죠.

▷ 박채서 : 네,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래서 책 ‘공작’으로까지 연결이 됐던 거고. 근데

▶ 김당 : 중간중간에 97년 대선 전에 오익제 월북 사건인가, 비디오테이프 이런 사건들을 제가 이제 그 도움을 받았죠, 북한 실정에 대해서.

◐ 김종배 : 근데 지금 영화가 개봉된 게 8월 8일인가 그렇게 되고 책이 출간된 게 7월이잖아요? 일부러 맞춘 거예요, 출간 시점을?

▶ 김당 : 아니 그렇진 않고요. 네, 한 보름 정도 간격인데 제가 준비했던 책은 그 예정보다 좀 시간이 안 맞아 가지고 출판사에서 좀 늦어졌어요.

◐ 김종배 : 아, 출간 시점이 늦춰졌군요.

▶ 김당 : 네, 그리고 영화 역시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좀 늦춰졌고. 그러다보니까 이제 비슷하게 시점이 됐습니다.

◐ 김종배 : 아니 그러면 영화는 잘 나가고 있다는 뉴스를 여러 번 접했는데 책은 어떻습니까?

▶ 김당 : 책은 영화보다 훨씬 못하죠. (웃음)

◐ 김종배 : (웃음)자랑이라고 당당하게 말씀을 하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 박채서씨가 겪은 여러 가지 일들도 김당 기자도 간접적으로 접하신 분이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를 나눌까 해서 오늘 두 분 함께 모셨는데요. 자, 그때 못했던 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 이 자리에서 저희가 이제 3, 4부를 터서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다 못할 것 같고 몇 개만 좀 뽑아서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제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게 그때 인터뷰 때 잠깐만 이야기가 나와서 그냥 넘어가 버렸던 게, 그때 박채서 씨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천안함 말씀을 하셨어요.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천안함 북한 소행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그 국내 일각에서는 이거를 둘러싸고 또 다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 박채서 : 네, 알고 있습니다.

◐ 김종배 : 북한 소행이 아닐 가능성도 문제제기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그런데 어떤 근거로 북한 소행이라고 판단을 내리셨는지 궁금했거든요.

▷ 박채서 : 저 역시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작전에 참여한 사람도 아니고, 군도 아니고

◐ 김종배 : 네.

▷ 박채서 : 저도 일반 국민들과 똑같은 입장인데 다만 북경에 있으면서 북한 최고수뇌부들한테 그걸 얘기를 들었거든요.

◐ 김종배 : 북한 최고수뇌부한테요?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최고수뇌부라면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 박채서 : 그럼 그 보다 더 정확한 팩트는 어디 있겠습니까?

◐ 김종배 : 잠깐만요. 북 최고수뇌부라고 하는 게 누구를 이야기 하는 겁니까?

▷ 박채서 : 그때 제가 직접 그 얘기를 들은 것은 장성택 부장이나

◐ 김종배 :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 박채서 : 네, 그때 이제 5월달에 김정일 일행들이 중국을 방중하고 나서, 그때 후진타오 중국 주석하고 회의를 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잠깐만요. 5월 이라고 하는 게 천안함 사건 2010년 3월에 발생했고

▷ 박채서 : 3월 26일날 했죠.

◐ 김종배 : 그 2010년 5월을 말씀하시는 거죠?

▷ 박채서 : 네, 2010년 5월 달에 그날 조중 간에 회의를 끝내고 나와서 그 날 밤에 저녁에 저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왔었어요.

◐ 김종배 : 장성택 부장이?

▷ 박채서 : 네, 만났는데 이제 거기서 바로 이제 봐라, 내가 예고를 했지 않느냐, 북한의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면 결국 이런 그 무력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 김종배 : 그 이런 무력충돌이라는 게 천안함을 이야기 하는 겁니까?

▷ 박채서 : 네, 그래서 이제 저도 이제 물었죠. 이제 그 자리가 일부 언론에서는 120시간 동안 조중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뭐 얘기했었다고 했는데 실제는 장성택 씨 얘기에 의하면 80분 간 후진타오 그 중국 주석한테 혼나는 자리였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종배 : 뭘 혼나요?

▷ 박채서 : 그러니까 왜 민감한 시기에 그런 일을 벌여 가지고.

◐ 김종배 : 아, 천안함 사건을 왜 일으켰느냐, 후진타오 당시 주석이 이렇게 혼냈다?

▷ 박채서 : 네, 문책만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들 내일 돌아가야 된다. 그래서 이제 또 한 가지는 예와 달리 그때는 북한의 당정군 최고수뇌부들이 다 불려 갔어요.

◐ 김종배 : 그 때 5월에?

▷ 박채서 : 네, 5월에 다 불려갔죠. 장성택 씨를 비롯해서 군의 수뇌부들 다 불려갔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통상 방중을 하게 되면 일주일 이상씩을 산업시설을 둘러보고 이런 선진화된 데를 보는데

◐ 김종배 : 네, 그렇죠.

▷ 박채서 : 그 때는 천진으로 바로 가 버렸어요. 이제 그런 얘기고 저는 또 그 상황을 확인을 해야 되니까, 그 회의에 참석했던 중국 수뇌부 중에 한 사람을 그 이튿날 또 전 만났죠. 아는 사람을 통해서 만나 가지고.

◐ 김종배 : 이번에 중국 수뇌부를 만나신 거예요?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장성택 부장 만난 다음날?

▷ 박채서 : 네, 다음날. 왜냐면 워낙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만나 보니까 거의 장성택 씨가 한 말하고 똑같더라고요.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그 얘기는 뭐냐, 장성택 씨한테는 그걸 못 들었는데 중국에 있는 수뇌부들한테 들은 얘기는, 미국이 중국을 압박을 가하고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해서 6자회담에 나오게끔 6월 달에 예정이 됐었다는 거예요.

◐ 김종배 : 아, 6자회담이?

▷ 박채서 : 네, 2010년 6월 달에 6자회담이 예정이 된 것은 아마 그 당시에 언론에서 나왔었어요, 그 얘기는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8월경에, 8월 정도에 미국의 대표부나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하는 걸로 아마 내부적으로 얘기가 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김종배 : 네.

▷ 박채서 : 이제 그런 사실은 나중에, 일부 신문에 나왔었죠. 이제 그것을 북한의 강경 군부 얘들은, 외부에, 외세에 굴종하는 걸로 그렇게 봤던 거죠. 외세에 굴종하는 거다, 우리가 강제로 끌려 나가니까. 아마 그런 상황을 일거에

◐ 김종배 : 천암함을 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 박채서 : 그렇게 이제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종배 : 중국 수뇌부가?

▷ 박채서 : 네, 그러니까 북한 군부 강경파들이 그러한 틀을 깰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그런 무력 도발을 일으켰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종배 : 그러니까 지금 장성택 당시 노동당 행정부장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 중국 수뇌부, 수뇌부라고 하는 게 어느 급입니까?

▷ 박채서 : 음, 그 회의에 참석할 정도이니까요.

◐ 김종배 : 그러니까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 사절단을 만나는 그 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수뇌부다?

▷ 박채서 : 네, 그 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고위직이니까 대단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죠.

◐ 김종배 : 그래요? 잠깐만요. 혹시 김당 기자도 지금 박채서 씨를 통해 그 전에 혹시 이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 김당 : 네, 그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 김종배 : 혹시 그래서 확인 취재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김당 : 어, 확인은 못했고요. 이를 테면 뭐 장성택하고 직접 뭐 연락할 순 없으니까

◐ 김종배 : 아, 그리고 몇 년 뒤에 처형당했으니까.

▶ 김당 : 네, 그렇죠. 그 당시에 제가 들은 바로는 2010년 구정을 전후해서, 설을 전후해서 한국에 2번 정도 왔었어요, 귀국을 했었어요, 우리 박 선생이. 그때 제가 만났거든요. 근데 그때 비슷한 얘기를 했었어요. 그러니까 북측에서 굉장히 현재의 남북 관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한다, 장성택을 비롯해서. 그래서 뭔가 군사적인 도발 내지는 하여간 뭔가 하여간 터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뉘앙스의 얘기를 그 때 들었어요.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이제 2009년부터 그 장성택을 비롯한 북한의 대남파, 온건파들이 그 당시 이명박 정부에 맞는 보수 정권에 맞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하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많이 했었거든요. 저한테도

◐ 김종배 : 네, 그 전에 인터뷰에서 그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 박채서 : 그 결과 이제 마지막 지금 우리 김당 기자님 말대로 마지막 저를 그 만난 자리에서 좀 한탄조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러다가는 남북 관계가 파탄난다, 강경파에 의해서 군사도발까지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고를 하고 들어갔었죠.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네.

◐ 김종배 : 근데 제가 거듭해서 여쭤 보겠는데요. 그럼 박채서 씨께서 장성택 당시 부장으로부터 그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럼 장성택 부장의 입에서 천안함이라고 하는 고유명사가 나왔습니까?

▷ 박채서 : 네, 나왔습니다.

◐ 김종배 : 진짜로요?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왜냐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보는 거예요. 분명히 천안함이라고 특정해서 이야기를 했습니까?

▷ 박채서 : 일부 언론에서 그것에 대해서 좀 오해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제가 그 때 분명히 들은 얘기는, 자기들이 어떻게 해서 그 9시 40분 경에 그 백령도 뒤에 한 1.8km 내지 1.5km지점에 뒤에 있는 천안함을 발견해서 공격했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저희들은 평상시에 우리 한국과 미국 간의 군사동맹 관계로 미국의 우리 첩보 위성을 항상 받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정보 공조를 하죠.

▷ 박채서 : 위성 자료를 받잖아요, 주기적으로. 매일 받는 거죠. 북한도 마찬가지로 중국하고 군사 동맹이 돼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그런 그 의례적으로 항상 받는다는 거예요.

◐ 김종배 : 군사 정보를?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위성 정보를?

▷ 박채서 : 네, 자기들은 천안함 위치를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능력이 없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서 그날 밤에 거기 공격할 수 있냐 내가 물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까지 해요. 자기들이 판단컨대 4월달에 이제 그 북한의 최고 명절이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김일성 탄생일.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그때가 되면 전 국민들이 충성의 맹세, 충성의 편지 뭐 별거 다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군부가 그때를 이용해서 당과 인민을 위해서 최고의 선물을 했다는 데 어떻게 할 말이 없더라는 거예요.

◐ 김종배 : 그게 선물이라고요?

▷ 박채서 : 그게 선물이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양에서는 아연한 거죠, 이게.

◐ 김종배 : 알겠습니다. 하나만 더 여쭤 볼게요. 지금 그 국내 언론에는 어떻게 보도가 됐냐면 천안함은 폭침이고, 북한의 의한 폭침이고 그것의 주역이 누구냐면 지금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다, 당시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지금 보도를 해 왔는데, 그러면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이 지시를 해서 그렇게 했다고 보세요?

▷ 박채서 : 그 누구를 지명은 안 했었는데, 지칭한 건 안 했었는데 군부의 강경파라고만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동안 내부에서 우리 정권이 바뀌면서 북한내부에서 극심한 권력 투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과거 10년 동안 이루어졌던 온건파 내지는 대남파들이 다 숙청 당했다고요. 그럼 강경파들이 득세를 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말을 하면서 이 사람들 한 얘기가, 군부의 강경파라고 했는데 김영철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어요.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그래 내가 또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들어보니까, 지금 우리가 김영철이라고 했던 것은 정찰총국에서 반잠수정이 있다, 그것 때문에 했단 얘기거든요.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그 반잠수정이 가서 어뢰를 쐈단 얘긴데 그 쪽에서 반잠수정에서 어뢰를 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 김종배 : 아, 그런가요?

▷ 박채서 : 네, 그건 좀 군사 지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아닌가 이렇게 얘기를 하고, 또 한 가지 덧붙여 주고 싶은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 당국이나 모든 언론에서 김영철이가 정찰총국장으로써 그걸 일으킨 주범이라고 아주 그냥 흉악무도한이라고 매도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남북회담에 자리 한 번 나타나니까 싹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 김종배 : 오히려 “내가 천안함 폭침의 주역이라고 지목당했던 김영철입니다”라고 자기 입으로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 박채서 : 네, 그러니까 그런데도 회담장에 한 번 공식적으로 나타나니까 그 사람은 다 면죄가 돼가지고, 그 사람 만난 사람들은 저 같은 예를 들어 보면 다 간첩이 되어야 되는데 그 사람을 만난 사람드은 간첩 됐단 말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 김종배 :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박채서 씨께서 또 중요한 어떤, 그 본인이 직접 들었다는 어떤 내용을 지금 제기를 해 주셨는데요. 하나의 문제제기로 일단은 그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논란이 지금 진행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어떤 그러니까 검증의 대상 정도로만 일단 중간 정리를 하고

▷ 박채서 : 여기서 한 가지 제가 좀 정리하고 싶은 것은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중국 군부와 모의했었다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고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미국과 같이 정보공조 하듯이 북한도 중국 군부와 정보공조를 한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중국이 위성 정보를 제공한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이제 통상적인 어떤 공조 차원에서

▷ 박채서 : 그렇죠. 그 일상적인 정보공조를 북한 군부가 활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렇게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종배 : 오늘 3부와 4부는 특별 인터뷰로 꾸미고 있는데요. 일전에 저희가 인터뷰를 했던 분입니다. 대북공작원이셨던 박채서 씨 모시고 인터뷰 나누고 있고요. 또 박채서 씨가 가장 신뢰하는 기자 그리고 박채서 씨의 모든 증언을 모아서 책 ‘공작’을 펴낸 저자이시기도 하죠. 김당 기자와 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박채서 씨를 통해서 천안함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사실 좀 충격적이기는 해요. 그리고 사실은 그러니까 박채서 씨에게는 약간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들으셨던, 어찌 본다면 한편에서 일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것들을 어떻게 교차 확인하거나 이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기자로서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 김당 : 다만 이제 간접적인 확인이랄까요, 이런 말씀을 드린다면 제가 오마이뉴스 기자 시절에 영화에서 리명운으로 나오는 이성민 씨가 역할을 맡았던 리철 씨, 리철 씨를 한 스무 번 가까이 만났거든요.

◑ 김종배 : 직접 만나셨어요?

▶ 김당 : 네. 베이징에서 주로 만났죠. 그랬는데, 안희정 씨가 재야, 야인이었을 때, 그때 2009년 10월이었나요? 그때 북한에서 제1차 핵실험을 했을 때, 2006년. 1차 핵실험을 했을 때 한국 정부가 그때 굉장히 긴장했잖아요, 북한 핵실험 때문에. 그래서 그때 안희정 씨가 베이징에 가서 리철 씨하고 비밀접촉을 했거든요.

◑ 김종배 : 노무현 정부 때죠?

▶ 김당 : 노무현 정부 때죠. 그때 그 사실을 제가 박채서 씨한테 귀띔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그걸 단독보도를 한 적이 있거든요. 몇 가지 그런 사례에 비추어봐서 장성택 건도 저는 전혀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저는 없는 거죠, 저한테는.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지금 리철이라는 인물이 나왔으니까 지금 영화 공작에서 등장하는 그 인물 아닙니까? 본명인 거죠?

▷ 박채서 : 네.

◑ 김종배 : 어떤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 박채서 : 북한에서 거의 몇 안 되는 경제전문가면서 자본주의를 알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 박사 논문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에 대해서 논문을 써가지고 박사를 받은 사람이니까,

◑ 김종배 : 그래요? 박사학위 논문이?

▷ 박채서 : 네. 박사 논문 제목이 그거에요. 본인 입으로 한 얘기고, 나중에 증서를 확인하니까 맞더라고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허가 받고 공부한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죠. 그리고 거의 천재, 천재 중에 천재.

◑ 김종배 : 그래요? 아무튼 공부는 그걸 했고, 그러면 당시 신분은 어떤 신분이었던 건가요?

▷ 박채서 : 그때 나올 때는 합영총국 심의처장으로 나왔고,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사람들이 그걸 인증을 했으니까요, 확인해줬으니까. 왜냐하면 일본의 조총련 사람들이 북한에 투자할 때 반드시 그 사람을 거쳐야 됐으니까요.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네. 확실하죠.

◑ 김종배 : 외국에서 어떤 북한에 투자를 할 때 거쳐 가는 관문?

▷ 박채서 : 네. 거기가 심의처장이에요.

◑ 김종배 : 총괄하는? 쉽게 얘기하면 외국 자본, 어떤 투자 유치와 관리의 총책,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네요?

▷ 박채서 : 네. 그러다 보니까 이제 그 당시 제일 많이 한 게 조총련들이었으니까 주로 조총련들하고 상대를 많이 했던 거죠.

◑ 김종배 : 그렇군요.

▶ 김당 : 제가 96년도에 처음 만났을 때 저한테 건넸던 명함이 대외경제위 심의처장이었습니다.

◑ 김종배 : 대외경제위.

▶ 김당 : 위원회.

◑ 김종배 : 그렇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이번에 김당 기자에게 이 문제를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최정남&#8231;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무슨 사건입니까?

▶ 김당 : 당시 이제 직파간첩이었죠. 97년 10월 달에 그때 검거가 됐지 않습니까?

◑ 김종배 : 97년?

▶ 김당 : 네. 대선 바로 직전에,

◑ 김종배 : 아마 기억이 이제 가물대는 분들이, 잠깐 소개 좀, 어떤 사건인지부터,

▶ 김당 : 선거 바로 직전에 이게 터지다 보니까 굉장히 그때 민감했죠. 왜냐하면 대선 바로 앞두고,

◑ 김종배 : 97년이니까 대선 직전이군요.

▶ 김당 : 네. 바로 대선 직전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우리가 간첩하면 흔히 직파간첩 또는 우회간첩, 또는 탈북자간첩, 이런 유형들이 많이 있는데요. 직파간첩은 사실 좀 드물죠.

◑ 김종배 : 그렇죠.

▶ 김당 : 그런데 최정남, 강연정, 두 사람이 실제 부부였어요. 실제 부부가 남파가 된 건데, 남파되기 전에 흔히 이남화교육이라는 걸 받는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한하고 똑같은 어떤 환경 속에서 사는 거죠. 그렇게 그런 걸 체득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연정 씨 같은 경우에 남한에 내려와서 생리대를 못 사가지고 굉장히 애를 먹었다는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런데 왜 남파가 된 거예요?

▶ 김당 : 그건 이제 당시 김순권,

◑ 김종배 : 옥수수박사?

▶ 김당 : 옥수수박사를 만나서 고영복 그 당시 교수, 그 당시 고첩으로 이렇게 검찰수사에서는 분류가 됐었죠.

◑ 김종배 : 고정간첩.

▶ 김당 : 네. 그래서 만나서 김순권 슈퍼 옥수수 종자를 구해오는 것,

◑ 김종배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 기억이 나는 것 같네요.

▶ 김당 : 네. 그게 나중에 또 영화의 한 모티브가 됐죠. 그랬는데, 남한 실정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게, 그런 버스 타는 거라든가 아니면 생리대 구입하는 것, 이런 것뿐만이 아니고, 자신들이 이른바 386운동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게 되면 얼마든지 포섭할 수 있다고 봤던 거죠. 그래서 그때 울산에 재야단체에 정 모 씨를 만나서 자기가 북에서 왔다는 걸 얘기를 한 거예요.

◑ 김종배 : 그러니까 북에서 온 진짜 간첩이 재야인사를 만나서 ‘나 북에서 왔습니다’라고 얘기를 했다고요?

▶ 김당 : 네. 그래서 정 모 씨는 이게 안기부 공작이 아닌가 싶어가지고, 겁이 나가지고 기자회견을 해버렸어요.

◑ 김종배 : 오히려 또 숨기면 나중에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 김당 : 그렇죠. 기자회견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그게 이제 엠바고가 걸렸거든요. 그래서 이제 보도는 안 됐어요. 보도가 안 되다 보니까 기자회견한 것도 몰랐죠. 그래서 다시 약속한 날짜에 다방에 가서 재차 만나기로 한 날에 갔었어요. 그때 이제 안기부 수사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그냥 체포를 한 거죠. 그렇게 해서,

◑ 김종배 : 그게 부부간첩 사건의 전말입니까?

▶ 김당 : 네. 체포해서 이제 안기부로 연행을 했죠. 연행을 했는데, 그때 연행한 바로 직후에 강연정 씨는 독약 앰플을 깨물고 자살을 했어요.

◑ 김종배 : 그래요?

▶ 김당 : 네. 그래서 거기까지가 다 이제 엠바고가 걸렸던 사안인데, 당시 재야단체 내지는 운동권학생들, 운동권 출신들을 포섭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 것 아닙니까? 엠바고를 걸었지만 그래서 그때 이제 우연히 또 임수경 씨하고 제가 연결이 되어가지고 임수경 씨한테 그 얘기를 들었어요.

◑ 김종배 : 무슨 얘기를, 그 간첩 이야기를요?

▶ 김당 : 간첩이 독약 앰플을 먹고,

◑ 김종배 : 자살을 했다?

▶ 김당 : 문제가 됐다. 자살을 시도를 했다. 생사는 그때 몰랐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 제가 그때 기사를 썼던 거죠. 그래서 난리가 났죠. 엠바고를 걸었던 사안인데, 이게 이제 기사화가 되니까,

◑ 김종배 : 기자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안기부는 둘째 치고,

▶ 김당 : 기자들은 오히려 별다른 얘기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 회원사가 아니었으니까,

◑ 김종배 : 그런데 이제 그때는 그러면 김당 기자가 기사를 쓸 때는 그 간첩을 검거한 다음이잖아요.

▶ 김당 : 그렇죠.

◑ 김종배 : 엠바고를 건 이유는 검거 때문에 엠바고를 걸었다고 이해를 하더라도 검거한 이후에는 굳이 엠바고가 계속 유지될 이유가 있었던,

▶ 김당 : 나중에 제가 조사받았을 때 들은 얘기로는, 그것 때문에 조사를 받았는데, 최정남, 강연정, 부부지만 위계질서가 있다는 거예요. 강연정 씨가 상부선이라는 거예요.

◑ 김종배 : 부인이?

▶ 김당 : 부인이, 그래서 북하고의 교신은 강연정 씨가 맡아서 했던 거예요. 그런데 교신이 안 되니까 북에서도 의심을 했죠. 그런데 이제 안기부에서 저한테 얘기하는 것은 당신 때문에 우리가 거짓 교신을 통해서 간첩, 그러니까 복귀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남파를 했으니까 당연히, 직파간첩이니까, 복귀할 때 간첩선까지 일망타진을 하려고 했는데, 당신 때문에 못 했다, 이거였어요.

◑ 김종배 : 뭐라고 하셨는데요?

▶ 김당 : 그런데 사실관계가 틀리거든요. 왜냐하면 강연정 씨가 상부선이었기 때문에 교신이 안 되니까 최정남 씨가 교신을 하고, 강연정이 교신을 못 하니까 북에서 이미 의심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간첩선을 안 내려 보냈죠.

◑ 김종배 : 그렇게 됐던 거군요. 그래서 임수경 씨로부터 또 제보를 받았다고요?

▶ 김당 : 네.

◑ 김종배 : 대북공작원이셨던 박채서 씨 그리고 또 안보전문기자시죠, 김당 기자, 두 분 모시고 특별 인터뷰 진행하고 있는데요. 조금 전에 간첩사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임수경 씨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얘기 나온 김에 김당 기자께 추가로 질문을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최근에 <경향신문>이 보도를 했나요? 임수경 씨가 평양 가서,

▶ 김당 : 네. 그 인터뷰는 제가 아니고, 우리 박채서 씨하고 인터뷰를 한 거죠.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그때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북한사람들의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어요.

◑ 김종배 : 성향?

▷ 박채서 : 네. 왜냐하면 제가 북한에서 어떻게 공작을 성공할 수 있었느냐의 질문 속에서 이제 북한사람들의 성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북한사람이 보니까 여기서 자기 마음에 없는 말한다든가 북한에 아부하는,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넘어간 목사라든가, 당시 이제 밀방북한, 같은 시기에, 문 목사, 작가, 이런 사람들 보면 와서 너무 비굴하게 굴더라. 그걸 좋게 보지 않더라. 반면에 임수경 씨는 물론 우리에게 다른 부정적인 것도 많이 됐었지만 실지 북한에서는 임수경 씨가 상당히 자기 소신 있는 발언도 많이 하고, 또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바람에 북한에서 사람들이 당황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오히려 그런 험지에 와서도 어리지만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신념을 말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북한에서 높이 평가하더라. 저는 좋은 의미에서 얘기를 했거든요. 담당기자가 ‘이런 걸 써야 되는데’ 그래서 내가 쓰지 마라. 그것은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고, 또 살아계신 분들의 명예가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이 담당기자는 쓰고 싶어서 막 그래요. 그런데 결국엔 썼더라고요. 임수경 씨가 어쩌어쩌니, 평양휴게소, 평양휴게소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나온 얘기도 아니고. 또 그런 얘기를 할 때 김일성 주변에 수행원들이 당황하고 어쨌다느니, 그건 임수경 씨가 축전 대표들하고 연설할 때 그런 소신 있는 발언을 해가지고 했다는 얘기를 섞어 써가지고 했는데, 그것은 좀 많이 와전된 것이기 때문에 정리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 김종배 : 일부 사실과 다르게 보도가 되어서 탈이 좀 났나보네요?

▷ 박채서 : 네.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임수경 씨가?

▷ 박채서 : 네.

◑ 김종배 : 만약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보도 때문이라면, 그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마무리를 하도록 하고요. 제가 1차 인터뷰 과정에서 그때 남북 간의 중매사업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남북중매사업, 그렇죠?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시간이 워낙 짧아가지고 잠깐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버렸는데, 더 구체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서요?

▷ 박채서 : 네. 그 결혼 작전이 거의 성사단계에 들어갔었죠. 그래서 이제 그 내용을 KBS 북경특파원이,

◑ 김종배 : 잠깐만요. 혹시 기억이 좀 가물대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 말씀을, 그때 말씀해 주신 게 북의 무용수 조명애하고 남측의 남성이 특히 남측 남성의 아버지가 좋게 봐가지고 결혼을 추진을 했고, 그 중간 다리를 이제 박채서 씨가 했고,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당시 안기부가 방해공작을 해서, 그렇죠? 그 남성의 어머니, 그 다음 남성한테 안 좋은 얘기를 많이 해서 결국은 성사가 안 되도록 공작을 했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 있어요. 지금 그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 박채서 : 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지금 당사자 조명애가 군 장교하고 결혼했다. 내가 나중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때 거의 충격을 받아가지고,

◑ 김종배 : 조명애 씨가?

▷ 박채서 : 네. 조명애 씨가 충격 받아서 거의 폐인이다시피 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네. 왜냐하면 결혼이 무산되고, 그 다음에 다시 후속 작전으로 광고를 찍기 위해서 나왔는데, 도저히 광고를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사람이 상했더라고요.

◑ 김종배 : 그러니까 잠깐만요. 선후관계가 이효리 씨하고 같이 공동으로 찍었던 광고는,

▷ 박채서 : 그 후에 한 거죠.

◑ 김종배 : 그 중매사업이,

▷ 박채서 : 무산되고,

◑ 김종배 : 무산된 이후에 했던 건가요?

▷ 박채서 : 네. 이후에 이제 다시 남북관계를 푸는 이벤트 사업으로 이제 그 광고를 시작한 건데, 그거를 하기 위해서 조명애를 데리고 나오는데, 북경에 나오는데, 도저히 이건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 김종배 : 그 정도였어요?

▷ 박채서 : 네. 들어보니까 결혼이 무산되면서 충격을 엄청 받았는가 봐요. 그래가지고 얼굴이 트러블이 엄청 심하고, 밥을 안 먹어요. 어떤 말을 해도 안 먹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서울에 있는 시아버지 될 뻔 했던 사람, 그분을 불러다가 안심시키고, 다시 이제 안정을 찾고, 일주일 동안 모든 수단을 다 했죠. 그래서 간신히 상해로, 촬영에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보니까 아마 처음에는 조명애가 갑자기 ‘너 남편이야, 시집 가’ 그러니까 당황했던 것 같아요.

◑ 김종배 : 그랬겠죠, 당연히.

▷ 박채서 : 네. 그러니까 이제 집에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래서 조명애가 ‘나 하나 남쪽으로 시집가서 우리 가족이 잘 산다면 난 가겠다, 걱정하지 마라’ 비장했는데, 그 선을 보고, 또 양가에서 이렇게 상견례를 하고, 데이트를 하고, 만나고 보니까 이 남자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리고 시아버지 될 사람도 너무 잘 해주고, 또 시어머니 될 사람도 그냥 안아주고, 그러니까 정에 굶주렸던 조명애가 홀딱 빠져버린 거죠. 저는 이렇게 표현하는데, 그 당시 조명애는 평양의 신데렐라가 됐던 것 같아요. 여기만, 바깥에만 왔다 가면 모든 게 가지고 들어가니까, 더구나 그 당시 김정일 위원장까지 지지받은 거니까, 허가받은 거니까 여기서 사준 명품신발, 모든 액세서리를 다 차고 다닐 수 있던 거예요. 평양을 활보할 수 있었던 거예요.

◑ 김종배 : 그대로?

▷ 박채서 : 네. 그러니까 그 어린 나이에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그게 무너져버리니까 충격을 엄청 받았던 것 같아요.

◑ 김종배 : 혹시 그러면 그 뒤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런 얘기는 들으셨어요?

▷ 박채서 : 네.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 광고를 촬영하는데도 울어요. 계속 울더라고요.

◑ 김종배 : 그냥 이유 없이?

▷ 박채서 : 네. 그리고 끝나고 갈 때도 헤어지는데 그렇게 울더라고요. 우리도 울고 다 울었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요.

◑ 김종배 : 아쉬움이 정말로 컸군요, 보니까.

▷ 박채서 : 네. 그래서 그게 아마 계속 되어가지고 시집도 못 가고, 마음의 병이 깊어서 아마 거의 폐인이 되었다는 얘기까지는 들었습니다, 제가.

◑ 김종배 : 그럼 그 뒤에도 시집을 못 간 거예요?

▷ 박채서 : 네. 못 간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폐인이 됐다라고 하는 게 어느 수준인데요?

▷ 박채서 : 그 사람들 말로는 폐인이라고 했으니까, 본인도 시집갈 의향이 없었고,

◑ 김종배 : 인생, 그냥 한 인생을 그냥 엉망으로 만든 거잖아요.

▷ 박채서 : 그렇죠.

◑ 김종배 : 도대체 안기부는 그런데 왜 그렇게 방해공작을 했대요?

▷ 박채서 : 글쎄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꾸준히 줄기차게 했어요.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못마땅했을 거고, 또 더군다나 제가 또 그 앞에 나와서 그렇게 여러 가지 하는 것이 또 못마땅했을 것이고, 더 크게 말하면 글쎄요, 저는 비약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남북관계가 잘 되는 걸 바라지 않는 세력들도 아마 있었던 것 같아요.

◑ 김종배 : 그런데 우리가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된 정보, 보도에 따르면 남북 대화가 있을 때 남측의 대북창구는 항상 안기부였었잖아요, 보통.

▷ 박채서 : 네.

◑ 김종배 : 그런데 보도에서 이제 접해진 어떤 안기부, 지금의 국정원이지만 모습과 뒤에서 방해공작을 한다는 건 사실 매치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 박채서 : 왜냐하면 실지 저는 모 방송이라든가 이런 기자들한테 경고를 받았어요. 제발 국정원 하는 일 앞에 나서지 마라. 왜냐하면 또 실지 노무현 대통령 당시 국정원이 못하는 일을 제가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 김정일 위원장하고 비밀회담 내용 같은 것, 그다음에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그런 여러 가지 문제를 제가 하다 보니까 국정원 입장에서는 참 불편했겠죠. 불편을 넘어서 참 눈엣가시 같았겠죠.

◑ 김종배 : 간단히 말하면 자기들은 물 먹고 있는데, 박채서 선생님은 오히려 고급정보를 빼가지고 정부에 제공을 하고 이러니까, 저 사람 뭐야? 이렇게 된 겁니까?

▷ 박채서 : 네. 그런 일이 있었죠.

▶ 김당 : 그때 장류청이라는 양반이 조한처장이었는데, 대외연락부, 왕자루이가 부장이었고요.

◑ 김종배 : 중국의?

▶ 김당 : 네. 그때 통역으로 참여를 했어요. 그래서 당시 후진타오, 김정일 회담의 통역으로 참여를 했는데, 그 장류청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박채서 씨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통역해 주니까 대화내용을 다 알잖아요. 그래서 그 내용을 빼낼 수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장류청 씨는 나중에 이제 숙청이 됐는데, 제가 취재해본 바로는 실제로는 장류청 씨의 부인이 한국에서 한국하고 사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았던 거로 드러났어요, 나중에.

◑ 김종배 : 정보기관이라는 게 우리의 정보기관,

▶ 김당 : 우리의 정보기관에,

◑ 김종배 : 국정원 얘기하는 겁니까?

▶ 김당 : 네. 그래서 부부가 다 같이 처형을 받은 걸로,

◑ 김종배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명애 씨가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참, 한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릴 수 있나, 그 남성분은 어떻게 됐는지 혹시 그 뒤에 얘기 들으셨어요?

▷ 박채서 : 그 후에 뭐 저도 2010년에 사건 터지면서 그쪽하고도 거의 단절됐죠, 연락도 없이.

◑ 김종배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도 처음 듣는데요. 지금 또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앞두고 있는데, 박채서 씨께서 직접 이산가족 상봉을 주도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뒤에서 역할을 하셨다, 이런 이야기, 이건 무슨 이야기입니까?

▷ 박채서 : 개별상봉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시고 나서 제일 역점을 뒀던 것 중에 하나가 이산가족 상봉이었거든요. 정부 간에 하는 것은, 남북 간에 하는 것은 100명 단위로 하는 단체상봉 외에는 없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박채서 : 그런데 아마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은 이랬던 것 같아요. 개별상봉이 중요하다, 이걸 터야 된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대통령이 틈만 나면 개별 상봉을 터야 된다, 물꼬를 트자 했는데, 그게 북에서 해 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박채서 : 그런데 이제 그때 마침 MBC가 현미 씨하고 남보원 씨 방북하는데, 만나러 가는데, 제가 처음에 주선을 했죠. 시작해서 하고 왔고, 물론 현미 씨는 자기 형제를 못 만났어요. 못 만난 이유는 여기서 발표하는 것은 현미 씨 개인을 위해서 제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김종배 : 프라이버시에 속하면 굳이 말씀 안 하셔도

▷ 박채서 : 네. 그런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 우리나라 최고의 모 일간지 회장이라든가 그다음에 대구경북 지역 그 당시 협회장이었던 오 모 씨, 그다음에 성 모 씨, 개성, 개성 이야기 나오는 주인공이에요.

◑ 김종배 : 네.

▷ 박채서 : 그분 부인, 이런 분들 많이 했죠. 많이 했는데, 저는 그것이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게요.

◑ 김종배 : 개별상봉을 주선을 많이 하신 건가요?

▷ 박채서 : 네. 그걸 많이 해줬죠.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상당히 그걸 관심 있게 보셨고,

▶ 김당 : 직접 평양에 가서 가족을 만나는 거죠.

◑ 김종배 : 그러네요. 그런데 그렇게 주선까지 하셨다니까 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보면 참 갖는 아쉬움이 아직도 5만 7천에 가까운 이산가족이 못 만나고 계시잖아요. 100명씩, 이번에 100명도 아니잖아요. 팔십 몇 명밖에 안 됐는데, 어느 세월에 다 만나겠어요.

▷ 박채서 : 그게 좀 제가 안타까운 일 중에 하나인데요. 사람들은 금강산 관광이 그 당시 정부 차원에서 후다닥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가 출마하기 전부터 이 금강산 관광이 준비되고 있었어요.

◑ 김종배 : 그래요? 언제부터요?

▷ 박채서 : 네. 그게 한 96년부터 해가지고 제가 전문가들 데리고 들어가고, 물론 허가받고 했죠.

◑ 김종배 : 그럼 준비한 게 현대그룹 말씀하시는 겁니까?

▷ 박채서 : 아닙니다. 그때 현대는 전혀 그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 김종배 : 그럼 준비 주체가 누구였어요?

▷ 박채서 : 그때는 삼성이 했었죠.

◑ 김종배 : 삼성이?

▷ 박채서 : 네. 삼성에서 하는 걸로 해서 준비를 다 했었고,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요.

◑ 김종배 : 삼성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 박채서 : 네.

◑ 김종배 : 96년부터?

▷ 박채서 : 그런데 관광이 아니고, 북을 설득할 때는 제가 어떻게 했냐면 그 당시 관광이라면 전혀 말도 못 꺼내는 상황이었어요. 안 되는 겁니다.

◑ 김종배 : 북한에서, 네.

▷ 박채서 : 네. 어떻게 했냐면 여기다가 금강산 관광지역을, 하나의 명산 아니냐? 누구든지 보면 홀딱 반한다. 여기를 좀 더 정비하고 해서 이산가족들이 이곳에 2박3일 동안 묵고, 자고, 생활하고, 헤어지는 정례상봉소를 하자.

◑ 김종배 : 면회소, 지금 이야기하는 면회소.

▷ 박채서 : 네. 정례 면회소로 하자, 이렇게 한 겁니다. 그랬더니 그게 이제 그 당시 김경희 경공업부장이나 장성택 그 당시, 이런 사람들한테 얘기가 된 거예요. 얘기가 되어가지고, 이게 된 거죠. 그렇게 하기로 했었고, 2단계로 일반 관광, 3단계로 종합관광지 개발, 이렇게 이제 계획이 됐던 겁니다.

◑ 김종배 : 그러면 금강산 면회소까지 이야기, 오케이했다고 하는 것은 이산가족 상봉까지도 폭넓게 가져갈 용의가 있었다?

▷ 박채서 : 전제 조건이 그거였었죠.

◑ 김종배 : 그래요?

▷ 박채서 : 그런데 이게 어디서 틀어졌냐면 북한사회라는 것이 한 번 결정되면 바꾸질 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거기서 2박3일 동안 이산가족 정례 상봉소로 만들어지는 조건으로 만들었는데, 저한테 묻더라고요. 그러면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이냐? 그 동안은 배로 하자. 왜 배로 하냐면 육로를 만약에 뜨는데, 얼마 걸리겠느냐? 제가 이제 와서 그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6개월, 철로는 2개월, 임시로 하는데, 그래서 6개월 동안만 하고 나머지는 육로로 하기로 했던 거죠. 그런데 그 당시 이제 정권이 바뀌고, 북풍사건 때문에 그 당시 이대성 파일 때문에 삼성이 떨어져나가고, 현대가 달라붙은 겁니다.

◑ 김종배 : 97년에 북풍사건이 터지면서,

▷ 박채서 : 98년도에요.

◑ 김종배 : 그렇죠. 97, 98년, 그러면서 삼성은 발 뺐고,

▷ 박채서 : 삼성이 떨어졌죠.

◑ 김종배 : 떨어졌다.

▷ 박채서 : 못 했죠. 저 때문에 못 한 거죠.

◑ 김종배 : 그러고 이제 현대가 해서,

▷ 박채서 : 현대가 나섰는데, 문제는 현대 정주영 회장이 육로를 계속 미룬 겁니다. 육로를 개방하면 현대가 독점을 못 한다고 봤던 거예요. 나중에 이제 김대중 대통령이 알고 노발대발 화를 내시고 그랬던 거죠.

◑ 김종배 : 비하인드 스토리가 또 이렇게 길군요, 이것도. 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됐는데, 끝이 없네요, 정말로. 못 다한 이야기는 책 ‘공작’을 통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으니까 접하실 수 있고요. 영화도 한 번 다시, 이렇게 말씀을 듣고 영화를 보시면 또 새롭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한 시간을 터서 인터뷰를 진행을 했는데, 아쉬움을 남기면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김당 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김당 : 저도 고맙습니다.

◑ 김종배 : 네. 김당 기자 그리고 박채서 씨 두 분과 함께 한 인터뷰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채서 : 감사합니다.

▶ 김당 : 감사합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tbs3@naver.com / copyrightⓒ tbs.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TBS 유투브 구독하기
정치 많이 본 뉴스 보기

개인정보처리방침  l  영상정보처리기기방침  l  사이버 감사실  l  저작권 정책  l  광고 • 협찬단가표  l  시청자 위원회  l  정보공개

03909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31 S-PLEX CENTER | 문의전화 : 02-311-5114(ARS)
Copyright © Since 2020 Seoul Traffic Broadcasti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