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서해성의 박학다설] '평창 올림픽은 170g이다'

최양지

tbs3@naver.com

2018-02-0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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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서해성의 박학다설] '평창 올림픽은 170g이다'

    ● 방송 : 2018. 2. 9.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 애청자 여러분들이 기다리셨던 코너입니다. 박학다설, 우리시대의 지식광대 서해성 작가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한 주 잘 보내셨죠?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오늘 어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서해성 : 방금 앞에서 기다리면서 들었습니다만 지금 역사적인 동계올림픽 기간이어서 오늘 딱 문을 열었고 평창올림픽인데 스포츠나 올림픽, 이런 것들에 관해서 배경지식이 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배경지식, 그렇죠. 그러니까 스포츠라고 하는 말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 서해성 : 기본적으로 라틴어입니다.

    ▶ 김종배 : 스포츠가?

    ▷ 서해성 : 오래된 언어들의 대부분은 라틴어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라틴어가 우월해서라기보다는 로마문화가 계속해서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 김종배 : 그렇죠. 그러니까 라틴어가 고대 로마언어, 그렇게 되는 거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디포르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어까지 알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옮기다, 떠나보내다, 이런 말인데요. 이게 같은 라틴 로망스제어라고 그러는데요. 그 프랑스어에 이게 당연히 사용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게 나중에 영어로 옮아가면서, 그럼 왜 데포르토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지 않고 현대영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냐면 영미역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거든요.

    ▶ 김종배 : 그렇지. 영국이 한때 지배했다가 바통 이어받은 게 미국이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디포르토라고 하는 말에서 스포츠라는 말이 나왔는데 의미를 풀어서 얘기하자면 기분을 풀다, 전환한다, 스트레스를 떠나보낸다, 예컨대 이런 슬픔을 달랜다, 논다, 이런 것들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런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쓸데없이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스페인 프로축구 구단에 데포르티브라고 있거든요. 아마 이게 여기서 나온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같은 말에서 나온 겁니다.

    ▶ 김종배 : 그런 거죠?

    ▷ 서해성 : 김종배 선생님 역시 훌륭한 지식인입니다.

    ▶ 김종배 : 찍었어요.

    ▷ 서해성 : 그런 의미였기 때문에 스포츠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는 거죠. 단지 근육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스포츠라는 게,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겠네요. 올림픽하면 이제 근대 쿠베르텡 남작, 딱 그렇게 단편적인 몇 개의 조각지식은 있는데 정리를 좀 해 주세요.

    ▷ 서해성 : 근대 올림픽이 생기게 된 건 기본적으로 증기기관의 출현하고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증기기관하고 어떻게 또 연결이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사람이 움직여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지. 움직여야죠.

    ▷ 서해성 : 움직여야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 모이죠.

    ▶ 김종배 : 그러니까 선수들 이동이나 이런 것 말씀하신 거예요?

    ▷ 서해성 : 그럼요. 이 사람들은 귀족이 아닙니다. 평민들이고 시민들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동할 만한 대중교통의 발전, 연락선의 발전이죠, 그러니까요.

    ▶ 김종배 :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위해서는 이동수단이 먼저 발달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 서해성 : 예측 가능한 이동수단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안 그랬으면 운동이라고 결국 굳힐 것인데,

    ▷ 서해성 : 네. 그전에 그러면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붙인 올림픽스 혹은 올림피아라고 붙인 그런 일들은 많았습니다. 근대 초기에도 많았다고요. 그런데 그건 다 지역 로컬단위에서 이루어진 스포츠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발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렇게 본격적인 여객선시대 같은 것들이 증기기관에서 규칙적인, 그런 걸 연락선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국제적인 연락선들이 등장하고 우편선들이 등장하고 이런 것들하고 발맞추어서 이제 이런 것들이 서유럽 중심으로 이루어지긴 했습니다만 그중에 미국을 뺄 수가 없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미국이 빠지면 당시로서 자신들이 봤을 때 서유럽의 반이 빠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선수들 제때 도착하고 이런 것들 가능했을 가능했던 거고요. 무엇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사실은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여가가 생겼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한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맞아요.

    ▷ 서해성 : 스포츠가 이루어지면 구경꾼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관중 없는 그건 팥 없는 찐빵이지.

    ▷ 서해성 : 그러려면 그 사람은 하루 종일 놀아야 되거든요. 그걸 우리가 여가라고 그러는데 유럽이 이렇게 여가가 생기게 된 것은 유럽이 산업사혁명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건 오해입니다. 산업혁명이 본질이 뭡니까? 인도에서 가져온 면화를 한꺼번에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게 산업혁명입니다. 그러니까 식민지 수탈 없이 유럽의 산업혁명은 없었습니다. 초과이윤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식민지 수탈을 통해서 드디어 여유가 생긴 거고요. 금융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생기고 이러면서 유환계급이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본격적으로. 유한계급이 대중적 유한계급이 출현한 거죠. 바로 이것이 근대 올림픽의 외적 조건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게 필요조건이 형성이 되니까 비로소 쿠베르텡 남작이, 멍석이네, 멍석. 멍석이 깔리니까 거기서 춤을 춘 거지.

    ▷ 서해성 : 또 하나 좋은 조건은 여가가 생기게 되면 과거에 귀족들만 하던 스포츠들을 시민들이 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에 의해서 귀족제도가 해체됐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는데 직업이 아닌 사람들이 그런 걸 하는 걸 우리가 흔히 말해서 아마투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아마추어, 이것도 라틴어에서 온 건데요. 아마토르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 요즘 말로 뭡니까?

    ▶ 김종배 : 말 그대로 매니아네.

    ▷ 서해성 : 네, 매니아. 일본말로 또 쓰는 말 있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오타쿠라고,

    ▷ 서해성 : 그런 비슷한 말하고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직업이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 김종배 :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야구 좋아하는 분들이 사회인야구팀 만들어서 주말에 딱 그렇게,

    ▷ 서해성 : 야구는 적절한 비유는 사실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구는 애초부터 장비가 들어가고 미국스포츠지 않습니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이런 겁니다. 뱃사람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그 사람은 배를 운전하는 게 프로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럼 요트경기에 출전 못해요?

    ▷ 서해성 :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부,

    ▶ 김종배 : 그러니까 직업이 그 종목과 관련된 사람은 아예 출전이,

    ▷ 서해성 : 출전이 불가능했어요. 마부는 승마경기에 나올 수 없었어요.

    ▶ 김종배 : 진짜로?

    ▷ 서해성 : 네.

    ▶ 김종배 : 가만 이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 서해성 : 말이 안 되는 거죠. 말이 안 되는 걸 이렇게 주장을, 무슨 얘기냐면 이게 이른바 스포츠십이라는거죠, 스포츠맨십. 그렇게 되니까 유한계급의 시민계급은 사실은 애초부터 출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일정하게 배제하고 있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숨기게 되면 안됐습니다. 숨기게 되면 박탈했어요.

    ▶ 김종배 : 자기 직업을 숨기면?

    ▷ 서해성 : 마부가 말을 타고 나오면, 해보고 싶잖아요, 사실은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몰았던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 하여튼 이렇게 해서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문화적으로 보면 참 재미있는 건데요. 왜냐하면 사실 이 사람들이 전체 믿는 게 기독신앙이라는 게 율신이지 않습니까? 이들이 끌어온 것은 그리스거든요. 그리스는 잡신의 나라죠.

    ▶ 김종배 : 수를 헤아리기,

    ▷ 서해성 : 유럽이라는 사회가 참 독특한데요. 하나는 율신의 체제를 끌고 가면서 동시에 잡신을 끌어들이는 묘한 요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유럽의 힘입니다. 만약에 율신체계로 유지했으면 오늘날 유럽이 그렇게까지 힘이 안 생겼을 가능성이 실제로 높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에서 있었던, 흔히 헬레니즘 그러는데 그것들을 이제 올림푸스산을, 과거에 올림푸스산을 파리나 런던이나 뉴욕으로 끌고 오는, 말하자면 그런 형태의 것이 올림픽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텐데 쿠베르텡이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은 쿠베르텡이 대단한 발견을 했던 것은 아니고요. 독일 고고학팀이 그리스에서 올림피아 유적을 발굴에 성공했습니다. 그 19세기 말에, 그러니까 그걸 쿠베르텡이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다 놀렸죠. 쿠베르텡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거죠. 그럼 그걸 다시 복원하면 어떨까?

    ▶ 김종배 : 그냥 말 그대로 반짝 아이디어네?

    ▷ 서해성 : 네. 그런데 이 양반은 귀족이었죠.

    ▶ 김종배 : 남작이니까.

    ▷ 서해성 : 이 양반 당시 국제적인 그 당시 유럽에 있었던 국제적인 사람들 그걸 묶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 김종배 : 상당한 위세가 있었으니까 제가 얘기하면 ‘너나 해’,

    ▷ 서해성 : 그렇죠. 너나 해죠.

    ▶ 김종배 : 그러니까 먹혔다는 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죠. 남작이고 귀족이고 그러니까,

    ▶ 김종배 : 발언력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 서해성 : 네. 가능했던 거죠. 그래서 애초에 사실은 쿠베르텡은 프랑스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애초에는 1900년도, 딱 1900년도가 되는 해에 올림픽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김종배 : 파리세계박람회가 그때 파리에 열리고 있었거든요. 계획이 되어 있었던 거죠.

    ▶ 김종배 : 자기 나라하고 연결을 지어서 하려고 했다고요?

    ▷ 서해성 :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는 세계박람회의 부속행사로 시작하려고 했던 거죠.

    ▶ 김종배 : 그런 차원에서?

    ▷ 서해성 : 네. 이 말 속에 사실은 상당히 여러 가지가 들어있는데요. 민족주의 요소만 들어있는 게 아니고 애초부터 올림픽이 일정하게 상업적인 성격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아래에 있었다.

    ▶ 김종배 :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을 했었던 거네.

    ▷ 서해성 : 이벤트죠.

    ▶ 김종배 : 내지 프로모션.

    ▷ 서해성 :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쿠베르텡의 이야기를 약간 바꿔서. 그래서 4년 먼저 1896년에 기왕에 하는 것 프랑스로 가기 전에 그러면 그리스에서, 아테네에서 먼저 하자. 그래서 아테네에서 발원지에서 시작을 해서 했던 거고요.

    ▶ 김종배 : 그러면 근대 올림픽이 처음 시작이 됐을 때 재미난 에피소드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 서해성 : 한 100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애초에는 은메달밖에 없었습니다.

    ▶ 김종배 : 네?

    ▷ 서해성 : 금메달이 없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그렇게 만들어져, 자신들이 규정을 만들어놨는데.

    ▶ 김종배 : 아니. 고대부터 은보다 귀한 건 금이었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하여튼 은메달하고 동메달이 있었고요.

    ▶ 김종배 : 혹시 아까 잠깐 최광기 대표가 무적의 댓글에서 그 얘기해줬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이분들이 순진해가지고 금메달을 주려면 진짜로 순금으로 제작을 해야 되는데 금이 없어서 은메달만 만든 것 아닐까요?

    ▷ 서해성 :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하여튼 은메달만 있었고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건 이 시간에 한 번 했던 얘기와 관련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는데 몇 월 며칠까지 오라고 그랬는데 미국선수들이 늦게 왔습니다.

    ▶ 김종배 : 못 왔구나.

    ▷ 서해성 : 달력이 달라서,

    ▶ 김종배 : 경기 일정이 어떻게 돼, 그러면? 아, 달력이 달라가지고 시차가 달라서?

    ▷ 서해성 : 시차가 아니고 달력이 달라서. 그리스가 정한 것이 우리가 알다시피 율리우스력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저번에 달력 말씀해 주셨지, 맞아.

    ▷ 서해성 : 달력이 달라서 늦게 도착한 거예요.

    ▶ 김종배 : 며칠이나 늦게 온 거예요?

    ▷ 서해성 : 한참 늦게 도착해서 경기가 나중에 시작되었습니다.

    ▶ 김종배 : 기다린 거예요?

    ▷ 서해성 : 네. 기다려야죠. 그 당시 10몇 개 나라밖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 김종배 : 엿장수 올림픽이었구나.

    ▷ 서해성 : 네.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아주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영국의 어떤 시인이 당시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에게 찬양하는 시를 썼어요. 그랬더니 이 양반이 갑자기 흥분해서 명예메달을 먼저 수여했습니다.

    ▶ 김종배 : 왕이? 자기 찬양했다고?

    ▷ 서해성 : 네, 자기 찬양했다고. 그리스에서 그렇게 했던 그런 얘기들이 있었고 여자들은 참가할 수 없었고요. 마라톤 길이가 42.195km가 아니고 그 당시에는 40.2km로 달렸고요.

    ▶ 김종배 : 달랐네요?

    ▷ 서해성 : 네. 규칙은 많이 바뀌었고요. 그러니까 올림픽 성화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28년도이고요. 성화 릴레이가 시작된 것은 1936년도 베를린 올림픽입니다.

    ▶ 김종배 : 성화릴레이, 성화 봉송 얘기하는 거죠?

    ▷ 서해성 : 나치가, 히틀러가 처음 기획한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 쓰고 있는 스포츠의 올림픽행사의 대부분은 히틀러만 없을 뿐이지 거의 히틀러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저는 왜 그랬는지 알겠네요. 그러니까 이제 성화 봉송 과정이 전국을 다 돌잖아요. 그러니까 성화를 가지고 이른바 나치라고 하는 게 국민총동원체제였으니까,

    ▷ 서해성 : 그리스에서 그때 했습니다. 영상이 다 남아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독일에 와서 바로 그런 목적으로 성화 봉송, 이벤트를 펼친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이렇게 된 겁니다. 그리스에서부터 와가지고 베를린까지 도착했지 않습니까? 다시 그 역순으로 히틀러가 유럽을 먹어갑니다. 성화 온 자리를 역순으로, 그러니까 그렇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런 정도가 있었고 2회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 중에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것하고 같습니다, 줄다리기.

    ▶ 김종배 : 잠깐만, 줄다리기, 언제?

    ▷ 서해성 : 2회 올림픽 프랑스에서 열렸을 적에,

    ▶ 김종배 : 그때 우리나라 출전했어야 되는데, 그럼 그때 2회때도 금메달은 없었나요?

    ▷ 서해성 : 네. 은메달 있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럼 은메달 따는 건데, 아깝네. 줄다리기 했었다고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기구타기도 있었습니다, 비공식 종목에는.

    ▶ 김종배 : 하늘을 나는 기구였다고요?

    ▷ 서해성 : 네. 낚시도 있었습니다. 규칙을 어떻게 했는지 저도 모릅니다.

    ▶ 김종배 : 월척, 이런 것?

    ▷ 서해성 : 그리고 포경, 포를 쏘는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하물며 인명구조도 있었고요. 연날리기,

    ▶ 김종배 : 우리나라 출전했어야지, 진짜.

    ▷ 서해성 : 그리고 비둘기 경주도 있었습니다. 제가 웃느라고 방송을 못할 정도로, 그런데 그 당시 스포츠에 대한, 이 말은 무슨 얘기냐면 스포츠에 대한 오늘날 같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오히려 이게 자꾸 올림픽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데 시골의 초등학교 운동회를 연상하면 오히려 더 친근감이 있는, 그렇잖아요?

    ▷ 서해성 :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훨씬 더 그 당시의 스포츠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많이 다르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종배 : 아니면 좀 더 범위를 하면 군수배 군민체육대회 정도,

    ▷ 서해성 : 네. 굉장히 소박하게 처음에는 진행되었다. 나중에 오늘날 같이 이렇게,

    ▶ 김종배 : 그러면 오늘날과 같은 올림픽이 된 그 터닝 포인트가 되는 대회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결정적인 건 1936년도 베를린 올림픽입니다. 우리 손기정 선수가 우승했던,

    ▶ 김종배 : 그거라고 봐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네. 그리고 최초로, 미디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최초로 CCTV형식으로 케이블티비로 그걸 중계했고요. 생방송으로 중계했습니다. 그리고 성화 봉송과 어마어마한 공간에서 해 주는 그런 형태의 것들,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을 복원한 형태의 베를린 주경기장, 이런 것들이 다 그때 시작되었던 것이었고요.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의 스포츠 꽃을 보여줬던,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2차 대전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 김종배 : 동계올림픽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 서해성 : 동계올림픽은 원래 없었고요. 하계올림픽 때, 1908년도 하계올림픽 때 피겨스케이팅이 최초로 하계올림픽 종목에 일부로 들어갔었습니다.

    ▶ 김종배 : 그건 실내 빙상장에서 하계로 들어가는 건가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랬다가 1920년에 벨기에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가 처음으로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고요.

    ▶ 김종배 : 이때도 역시 하계올림픽이죠?

    ▷ 서해성 : 네, 하계올림픽입니다. 그러다가 1924년도에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한 20년, 30년 가까이 늦어졌다, 다른 것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은. 동계올림픽을 하는 나라가 그 당시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 김종배 : 이건 정말 기후하고 직결되는 것 아니에요, 그 나라의 기후.

    ▷ 서해성 : 그러니까요. 또 하나는 장비입니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다 할 수는 없었던 거고요. 사실 한국인들이 동계올림픽을 이해하게 된 것이, 본격적으로 이해하게 된 건 사실 김연아 선수 아닙니까? 그전에 사실 우리가 트리플 악셀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 김종배 : 엣지란 말도 몰랐죠.

    ▷ 서해성 : 그렇죠. 몰랐죠. 그러니까 그것은 무슨 얘기냐면 김연아 선수가 나올 만큼 되려면 앞에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경제발전입니다. 경제발전 없이는 동계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없고 실은 참가하기도 어렵고 또 하나는 그걸 소비하는 대중, 피겨스케이팅을 보면서 굉장히 좋아한다든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 같이 맞춰져야 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시아에서는 동계올림픽에 참가해서 성적을 냈던 나라는 딱 한 나라가 있었는데 일본이었습니다.

    ▶ 김종배 : 군국주의 시절인가요?

    ▷ 서해성 : 아니요. 해방이 된 뒤에도요, 종전 뒤에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일본이 경제적으로 됐기 때문에 그래도 그 스포츠에 참가해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나마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른 나라가 한국 정도,

    ▶ 김종배 : 그런데 동계올림픽도 사실은 생각하기 나름인데 눈뭉치 던지기, 이런 종목 아니면 비료푸대로 미끄럼타기, 이런 것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걸 전문용어로 어떤 사람들이 그런 스포츠종목이 있던데요? 비닐을 좀 더 두껍게 만들어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 김종배 : 아니. 저 어릴 때 진짜 많이 했던 게 제 고향마을에 산중턱에 있어서 항상 눈만 오면 옛날에 비료포대 중에 아주 두꺼운 비닐로 되어있는 비료포대가 있었어요.

    ▷ 서해성 : 요소비료푸대.

    ▶ 김종배 : 아시네. 엄청 잘 미끄러지거든요.

    ▷ 서해성 : 그러니까요. 그런 종목이 있던데요, 보니까요. 엎드려서 타는,

    ▶ 김종배 : 장비가 약간 다르지. 아무튼 엉덩이가 엄청 아프지만 그래도 그 속도감,

    ▷ 서해성 : 그런 장비들이, 바로 그 얘깁니다. 돈이 없으면 실제로 그런 대회는 출전도 불가능하고 연습이 불가능하죠, 우선.

    ▶ 김종배 : 하긴, 슬로프, 이런 게 안 만들어지면 할 데가 없는 거죠.

    ▷ 서해성 :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동계올림픽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 그런 스포츠적 특성이 있다. 나쁘단 뜻은 전혀 아닙니다.

    ▶ 김종배 : 이제 평창으로 한 번 가봤으면 좋겠는데요. 우리 서 작가님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게 어떤 겁니까?

    ▷ 서해성 : 아마 한국인 전부가 그럴 텐데 여자 아이스하키.

    ▶ 김종배 : 단일팀?

    ▷ 서해성 : 네, 단일팀 경기. 사실 이건 일종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단일팀보다 이번 단일팀에 훨씬 더 어려운 조건하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김종배 : 어떤 점에서요?

    ▷ 서해성 : 현재 주변 강대국들, 4대 강대국들이 이걸 사실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미국, 일본 최고정치지도자들은 비아냥거리고 희롱하고 있는 상황인데 남북한이 이 어려운 국면, 핵 국면이죠, 사실은. 그런 속에 어쨌든 간에 오늘 중요한 분들이 북한에서 오고 이랬는데 이런 것들 하면서 여자 아이스하키팀으로 뭔가 이루어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정말 갖고 그것이 정말 평화올림픽, 역사적으로 있었던 올림픽 중에서 평창올림픽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올림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얼마 전에 단일팀이 스웨덴하고 평가전을 치렀는데 걱정을 사실 속으로 많이 했는데 경기력보다 어떤 화합이 되겠는가, 융화가 되겠는가? 근데 팀워크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단일팀 해서 손해 본 적이 없습니다.

    ▶ 김종배 : 역사적으로 한 번 얘기해 주세요.

    ▷ 서해성 : 우리가 기억나시는 게 1991년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아니겠습니까?

    ▶ 김종배 : 대표적인,

    ▷ 서해성 : 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때 아마 영화제목이 코리아였나?

    ▷ 서해성 : 코리아팀, 영화제목은 코리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단일팀 이름이 코리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정화 선수 그리고 북한의 이분희 선수 이렇게 해서 일본 치바에서 열린 우리가 73년도인가요? 그때 이에리아 선수, 정현숙 선수, 이런 사람들이 나가서 유고슬로비아 지금 없어진 나라죠.

    ▶ 김종배 : 사라예보.

    ▷ 서해성 : 사라예보에서 우승하고 나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는 외려 지금이 더 어려웠습니다, 91년도가. 왜냐하면 중국팀이 무적의 강팀이었습니다.

    ▶ 김종배 : 중국팀을 이길 팀이 없었죠.

    ▷ 서해성 : 우주 최고 강팀이었어요, 지구 팀이 아니라.

    ▶ 김종배 : 맞아. 우주 최고였어요.

    ▷ 서해성 : 그리고 더구나 이게 8연패한, 여자팀은 8연패를 한 그런 팀이었는데 남북한의 선수들이 들러붙어가지고 이겼죠. 이건 정말 기적이었죠.

    ▶ 김종배 : 신화, 신화.

    ▷ 서해성 : 정말 신화죠. 그때 더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북한의 선수 유순복이라는 선수가 세계대회를 처음 나간 거예요. 국제대회를 처음 나간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결승전에서 연거푸 꺾었잖아요, 중국을요.

    ▶ 김종배 : 비밀경기.

    ▷ 서해성 : 우리가 그런 계획이 없었는데 이 사람이 울렁증이 심해서 출전할 수 없을 그런 상황이었는데 북한의 주전선수인 이분희가 그 경기하는 동안에 간염에 걸린 거예요. 그래서 주전이 된 거예요, 이 사람이.

    ▶ 김종배 : 대체선수가 된,

    ▷ 서해성 : 네, 대체선수. 그렇게 해서 세계우승을 했고요. 그다음에 피파에서 했던 청소년게임,

    ▶ 김종배 : 청소년 단일팀이 있었죠.

    ▷ 서해성 : 네. 20세 이하의 청소년게임에서도 우리가 8강에 갔던, 그랬었고 2차 탁구팀 또 있었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그런데 이때는 또 남자팀이 우승을 했어요. 결승전에서 우승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일팀 성적은 아주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또 단일팀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갈등을 조절하고 하는, 또 사람들에게 ‘북한에 사는 사람도 우리 한 동포구나’ 가슴으로 우는, 눈으로 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우는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91년도에 있었던 탁구 단일팀을 제가 이렇게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해 우리는 40mm짜리 통일을 이루었다. 40mm가 뭐냐면요, 탁구공 지름입니다. 이번에는 아이스하키에 쓰는 퍽,

    ▶ 김종배 : 네. 퍽이라고 그러죠.

    ▷ 서해성 : 한국말로 없습니다, 퍽이라는 게. 퍽 크기가 직경이 7.62mm, 두께가 2.54cm, 무게는 한낱 170g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여자 아이스하키팀 훌륭한 성적을 내가지고 170g까지 통일을 달성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그러게요. 내일 첫 경기가 있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내일 첫 경기가 있다고 하니까요, 선전할 거라고 기대를 하고 스위스하고 붙는다고 합니다.

    ▷ 서해성 : 그런데 제가 가슴 아픈 얘기도 하나 하자면요. 64년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북한선수 한필화가 아시아 최초로 스케이팅 종목에서 메달을 따냈습니다.

    ▶ 김종배 : 그런 적이 있어요?

    ▷ 서해성 : 남자 통틀어서요. 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일본에 와서 선수로 참가한 대회에 온 거예요. 그런데 아사이신문에서 남한에 살고 있는 오빠 한필성에게 전화를 연결해 준 거예요.

    ▶ 김종배 : 이산가족이었구나.

    ▷ 서해성 : 네. 이산가족이었죠. 오빠는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 많은 사람들 이산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어렵게 90년도에 어렵게 만나가지고 그때는 한필화 선수가 선수가 아니고 임원으로 일본에 다시 왔는데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대회에서,

    ▶ 김종배 : 90년?

    ▷ 서해성 : 네, 90년에. 그때 자기가 녹음한 테이프를 어머니에게 들려달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을 적에는 단일팀이 안 이루어졌을 때도 이런 가슴 아픈 얘기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같이,

    ▶ 김종배 : 가슴 아픈 얘기하면 신금단 선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 서해성 : 그렇죠. 노래로까지 만들어졌지 않습니까? 눈물의 신금단, 이 양반이 그 당시에 이 신금단 선수가 육상선수인데 비공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던 사람이에요. 단거리에서 200m, 400m 이런 데에서, 그런데 이 양반 아버지가 신문준이라는 분인데 이분은 월남하시고, 6.25때요.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까 도쿄올림픽에서 신금단 선수 참가를 한 겁니다, 도쿄올림픽에. 아버지가 거기를 간 거죠. 문제는 여기서 왜 생겼냐면 중앙정보부가 신금단을 데리고 남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 거예요, 아버지한테요.

    ▶ 김종배 : 진짜 그랬어요?

    ▷ 서해성 : 네. 그래서 아버지가 딸에게 ‘금단아, 아버지 따라서 남한으로 가자’.

    ▶ 김종배 : 전향공작이잖아요.

    ▷ 서해성 : 그렇게 되니까 북한선수단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차단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한 10분도 채 못 만나고 헤어지게 되었던 것을 사람들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눈물의 신금단이라는 노래를 황금심이라는 가수가 불렀습니다. 지금도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아까 잠깐 올림픽의 상업성을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이게 상업성이 범남하는 게 티비하고 직결된다고 봐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텔레비전 중계가 등장하면서 어마어마한 광고료가 생기게 된 것이고요. 중계료를 IOC가 많은 부분을 가져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가령 멕시코에서 몇 년 전에 월드컵 있었지 않았습니까? 멕시코 시설하고 그런 데 한 3조 원 정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피파가 가져간 돈은, 멕시코는 그러고 3조 원 쓰고 나서 이익을 흑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피파가 가져간 6조 원 정도를 가져갔습니다.

    ▶ 김종배 : 딱 그거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 서해성 : 네. 평창도 상당히 잘 그런 걸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한 7분 있으면 개막식이 시작이 되는데 맞춰가지고 서해성 작가께서 올림픽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정화 선수가 단일팀이 끝나고 나서 단일팀이 유지가 되지 않으니까 굉장히 섭섭한 얘기를 했습니다. 탁구선수 현정화 선수요.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는 차라리 단일팀 같은 것 하지 말자, 이렇게 말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단일팀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기왕에 만들려면 단일팀 유지하자는 겁니다. 저는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관계자들 만나고 스포츠관계자들 만날 텐데 기왕에 여자 아이스하키팀 만들려면 오래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한 번만 하지 말고 한 5년, 10년, 다음 대회까지도 같이 해서 정말 높은 성적을 내는 그런 바람을 갖게 됩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스포츠라는 영어의 기원이 되는 디포르토라고 하는 말이 바로 뭔가를 떠나보내고 훌훌 털어버린 그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분단의 슬픔을 다 날리지 못할망정 분단의 슬픔을 덜어내고 통일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그런 동계올림픽이 되었으면 하는 정말 간절한 소망을 말씀드려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평창이 결국은 평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남북의 화합된 모습부터 보여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국민들의 똑같은 생각일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박학다설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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