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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성의 박학다설] 100살 먹은 헌법 이야기
  • 조주연 기자 tbs3@naver.com ㅣ 기사입력 2018-07-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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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7. 13.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오늘 어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서해성 : 머지않아 제헌절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며칠만 지나면, 그래서 헌법을 만든 날이다, 그런 날이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과문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헌법을 만든 날을 지키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여튼 그걸 따로 기리고 뜻을 새기고 있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종배 : 그건 좋은 건데,

▷ 서해성 : 좋은 거죠. 그런데 문제는 제헌절 날 진짜 우리 헌법에 대해서 제대로 누가 풀어서 얘기하거나 혹은 그 헌법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한 그런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 김종배 :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에 대해서 신문, 방송 통틀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본 기억이 저도 없어요.

▷ 서해성 : 제가 알기로는 이 방송을 준비하면서 아무래도 하다보면 자료를 찾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최초의 헌법을 임시헌장이라고 그렇게 말하는데요.

▶ 김종배 : 임시헌장?

▷ 서해성 : 임시헌장. 그때는 헌법이라고 안 그러고 헌장이라고 그랬습니다. 사실 굳이 말하면 콘스티튜션(constitution)이라는 영어를 헌법으로 번역한 사람들이 일본인들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 헌장이라고 사용했는데요. 하여튼 그 임시헌장을 1919년 4월 11일 날 우리가 공포, 이때는 공포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널리 밝혔다, 그 말이죠. 그런 얘기들을 사실 들어본 적이 없어가지고, 제가 사실 그래서 이 방송을 준비했거든요. 그래서 미디어에 그런 기록이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사실 그런 기록을 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게요. 보통 언론 같은 경우도 꺾어지는 해라든지 특별한 어떤 날이 되면 관련 특집도 많이 하는데,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임시헌장?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임시헌장의 내용이라든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는 별로 저도 접해본 기억이 없어요. 그럼 오늘 꼼꼼하게 얘기를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요. 아주 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우리 애청자 여러분들 귀 기울여주시기 부탁드리고요.

▷ 서해성 :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시헌장을 우리가 발표함으로써 우리는 전제왕조시대를 우리 손으로 끝낸 겁니다. 헌법에 나오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헌법에 나오니까 전제왕조가 끝난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는 왕에 대한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 이민족의 실질적인 지배는 받고 있었지만 선언적으로 거기서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종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권은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강제로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었던 것이지, 우리 주권까지 다 빼앗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우리가 헌법을 선언함으로써.

▶ 김종배 : 그러니까 3.1운동이 있었고,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지면서 대한민국을 선포를 하는데, 대한민국의 임시헌장,

▷ 서해성 : 헌법을 발표한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이게 바로 그거죠.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런데 이건 그런 주권선언이자 인권선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게 무슨 얘기냐면요, 모든 헌법은 인권선언입니다. 왜냐하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 김종배 : 헌법의 핵심 기본내용 중에 하나가 기본권인데,

▷ 서해성 : 가장 중요한 게 기본권입니다. 그러니까 기본권은 기본인권을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오늘 세계, 프랑스 인권 선언이나 흔히 말하는 오늘날 세계인권선언의 기초가 되는 내용이거든요, 48년도에 만든. 그런데 애초에 만든 건 1789년 8월 달에 나왔거든요, 그것이요. 들어있는 내용이 뭐냐면 그 16조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권리보장이 확실하지 않은 사회는 모두 헌법을 가진 게 아니다. 이 말은 무슨 얘기냐면 어떤 법보다도 헌법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인권에 관한 명백한 조항이 없으면 그건 헌법으로 볼 수 없다, 이 말이거든요. 이게 1789년 프랑스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헌법은 동시에 헌법이자 주권선언이고, 인권선언이라는 것이죠. 그런 내용이 잘 들어있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이 임시헌장을 누가 작성을 한 거예요?

▷ 서해성 : 그러니까 그 임시헌장 기사록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즘말로 속기록입니다. 속기록에 이런 대목이 있는데, 임시의정원 회의가 1919년 4월 10일 날 밤 10시에 시작해서 그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12시간 진행했다는 거죠. 29명이 프랑스 상하이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 22번지에 모여서 그걸 했다는 건데, 그 대목에 이렇게 나옵니다. 30분 시간을 줄 테니 헌법을 만들어오라, 했더니 30분 만에 헌법을 만들어왔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이게 그런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게 어떻게 누군가 사전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헌법을 어떻게 30분 만에 만들어오겠습니까? 이따가 조소앙이라는 선생님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 김종배 : 조소앙 선생?

▷ 서해성 : 네. 소앙은 호이고, 조용은이라고 하는 분인데, 흔히 호를 불러서 우리가 조소앙 선생님이라고 그러는데, 조소앙 선생님이 여러 가지 내용으로 봤을 적에 그분이 집필하셨다고 볼 수 있고요. 또 그분이 회고록에도 당신이 썼다, 이렇게 남기고 있기 때문에 조소앙 선생으로 현재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렇군요. 그럼 일단 그 내용을 살펴봤으면 좋겠는데, 핵심을 말한다면 어떤 걸까요?

▷ 서해성 : 우선 나라 이름을 정한 일이죠.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죠. 굳이 말하면 대한왕국 같은 거였는데, 민국이 된 거죠. 민이라는 한자가요, 사실은 상형문자인데요. 그것이 이제 눈 목자 가지고 만든 글자거든요.

▶ 김종배 : 그렇죠. 일전에 한 번 말씀해 주신 적 있어요. 거기서 빼가지고,

▷ 서해성 : 네. 그걸 핀으로 찔러놓은 그런 형상인데, 바로 그 민들이, 앞을 못 보던 민들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 된 것이고요. 두 번째는 정치체제입니다. 정치체제가 세계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선포했습니다.

▶ 김종배 : 이게 세계 최초에요?

▷ 서해성 : 세계 최초입니다.

▶ 김종배 : 진짜?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는 민주제이거나 혹은 공화제를 채택했는데, 우리는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습니다. 이건 명백하게 조소앙 선생의 식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구황실을 우대한다, 이랬습니다. 이 말은 뭔 뜻이냐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뜻입니다, 우대한다는 뜻은. 우대하기 위해서 한다기보다 그리고 우리는 국제연맹에 가입한다, 국가다, 이 말이죠. 국가이고, 공식정부다, 이렇게 되어 있고, 항목은 10개 조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10개?

▷ 서해성 : 네. 어떻게 보면 10개밖에 안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 김종배 : 상당히 단출한데?

▷ 서해성 : 네. 그런데 사실의 그 안에 정말 좋은 내용들이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플러스 공화정, 민주공화정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 있는 조항을 만들었던 거죠. 그러니까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말이 그리스 말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데모스(Demos)하고 크라티아(kratia)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핵심이 복잡한 얘기가 아니거든요. 데모스는 대중, 군중, 이런 거고, 크라티아는 권력, 민주주의란 게 뭐냐면 민이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거죠. 민권주의죠, 그러니까.

▶ 김종배 : 민의 자기지배,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죠.

▷ 서해성 : 그렇죠. 민의 자기지배죠. 시민참여, 또 하나는 뭐냐면 그리스에서 했던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 그러니까 영어로는 오스트라시즘(ostracism)이거든요. 도편추방, 이 사람들이 모여서 주로 했던 일이 뭐였냐면 의사결정도 했지만 사실은 권력자를 추방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 힘 있는 자를 배제한다는 겁니다.

▶ 김종배 : 요즘 개념으로 하면 탄핵에 준하는,

▷ 서해성 : 그렇죠. 이게 탄핵의 기원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탄핵해서 어떤 분은 구치소로 가는데, 이때는 나가.

▷ 서해성 : 밖으로 내보냈죠. 나가였죠. 그러니까 뭔가 힘이, 그런데 이 사람은 죄가 없어도 나갔어요. 너무 이 사람이 권력이 많으면 추방했던 거예요. 왜 그랬냐면 그러면 데모스, 곧 대중이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한 사람의 권력이 너무 많으면 대중의 힘이 직접지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게 민주주의인 거고, 공화정이라는 건 이제 로마 왕정, 레그눔 로마눔(Regnvm Romanvm), 이렇게 말하는데, 라틴어로는. 로마 왕정에 타르키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7대 왕인데, 그 사람을 추방하고, 여러 사람이 같이 통치하는 것, 그걸 이제 공화정이라고 불렀던 거거든요. 라틴어로는 레스 푸브리카(Res&#160;Publica), 영어로는 리퍼블릭(republic)이거든요, 리퍼블릭. 우리가 리퍼블릭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중에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그럼 그 리퍼블릭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힘이 뭐냐? 그랬더니 그걸 공민적 덕, 이렇게 번역했거든요.

▶ 김종배 : 임시헌장에서?

▷ 서해성 : 아니요. 우리 정치학자들이, 그런데 영어로 하면 시빅 버추어(civic virtue), 그러니까 어려운 말 아닙니다. 시민이 시민적 덕으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어떤 이익을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그런 걸 같이 가져야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화정의 핵심이다, 그렇게 말했다는 거죠. 그 두 가지를, 그러니까 이거죠. 시민의 직접참여도 보장하고 그리고 시민적 덕으로 운영되는 그런 정치체제를 두 개를 합쳐서 세계 최초로 우리가 민주공화정이라고 하는 나라를 세운 거고, 1920년도에 한국을 따라서, 한국의 임시정부를 따라서 했던 게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바로 헌법에다가 민주공화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우리가 먼저 한 겁니다.

▶ 김종배 : 이것도 처음 듣는 얘긴데,

▷ 서해성 : 이게 사실 진작부터 들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헌법에 대한 쉽게 풀어서 하는 얘기 같은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 김종배 : 우리가 원조국이군요.

▷ 서해성 : 원조국입니다. 민주공화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원조국입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고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 서해성 : 이런 내용이 나오게 된 건 사실은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났을 적에 사람들이 야, 이것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단지 거기서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 선배들은 민주공화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김종배 : 3.1운동 이전부터?

▷ 서해성 : 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게 중요한 겁니다. 난데없이 임시정부 수립된 게 1919년 4월 11일인데, 3.1운동으로부터 한 달 열흘 지난 겁니다. 어떻게 아무리 센스가 빨라도 그렇지, 한 달 열흘에 국가를 세우고, 정부를 세우고, 그러겠습니까?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침 고종이 떠났기 때문에 조선이 사실상 끝난 거지 않습니까? 조선과 대한제국이 끝난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되었던 거죠. 1917년에 이른바 이런 내용들을 거의 담고 있는 대동단결선언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걸 이끈 사람이 아까 말씀드렸던 조소앙 선생입니다. 그리고 신규식 선생, 이런 분들이, 열네 분이 이걸 했는데, 그런데 거기에 아주 근사한 대목이 나옵니다. 주권은 불멸하는 것이다.

▶ 김종배 : 주권불멸?

▷ 서해성 : 네. 근사한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 순종황제께서 이렇게, 융희황제께서 3보, 영토, 인민, 주권, 우리가 흔히 국가의 3요소를 얘기하는 거죠. 3보를 포기한 경술년 8월 29일, 그러니까 1910년 8월 29일을 얘기하는 거죠. 그것은 곧 우리에게 선양한 것이라는 겁니다, 일본에게 준 게 아니라.

▶ 김종배 : 민에게?

▷ 서해성 : 네, 민에게. 왕이 모든 주권을 갖고 있었는데, 그때 민에게 이 모든 걸, 결국 내려놓은 건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주권은, 그때부터 우리의 주권은 재민하게 되었다는 거죠. 민에게 있게 되었다. 아주 근사한 표현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문서상으로 분명하게 있고요. 그전에도 사실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오는 신문들, 공립신보라고 하는 것인데 거기에서도 이런 공화정을 주장하고 있고요. 민주공화정을 주장하고 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준비된 상태로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이런 내용을 기초해서 만들 수 있었다 하는 것을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이 임시헌장을 작성한 주인공이 바로 조소앙 선생이라고 단정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어떤 기록이나 이런 게 있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이분이 임시정부를 만들어내는데 쓴 용어들 같은 것들이 그전에 이분이 먼저 사용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가령 무오독립선언, 1918년인데, 실지로 19년에 있었는데 하여튼 18년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기미선언하고 겹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내용들 상당 부분이 임시정부 수립에 반영되었습니다. 문장도 반영되었고, 개념도 반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근거들은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어떤 분이시냐면 그런 무오독립선언도 기초했고 그리고 한독당도 기초했고, 한독당, 김구 선생 한국독립당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도 기초했고, 그러니까 이분이, 그리고 광복군 포고문도 작성했고, 대일본 선전포고문도 작성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텍스트는 이분이 거의 다 작성하신 거예요. 대단하신 분이에요, 이분이.

▶ 김종배 : 그런데 아마 조소앙 선생 이름 석 자 모르는 분들 많을 텐데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이렇게 중요한 작업을 하신 분인데, 왜 이렇게 모를까요?

▷ 서해성 : 이분이 납북되셨거든요. 납북되셨는데, 그것에서만 끝난 게 아니라 월북을 주장한 사람이 많았어요.

▶ 김종배 : 월북이다, 납북이 아니라?

▷ 서해성 : 그런데 이게 단지 이 양반 한 번도 사회주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꾸 폄하됐던 이유가 사실 있어요. 이분을 부각하면 임시헌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부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너무 강해지는 거예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강해지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세력들, 분단을 영구하고 싶어 하는 세력들은 조소앙이 빨갱이여야 하는 거예요. 하루도 빨갱이로 살지 않았는데, 조소앙을 언급하는 게 일종의 금기였어요, 오랜 동안에.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 조소앙 선생 잘 모르고, 그냥 조소앙은 삼균주의를 말한 사람이라고만 아는 거예요. 실은 그보다 어찌 보면 더욱 중요한 것이 사실은 우리 헌법을 기초한 사람이죠.

▶ 김종배 : 그렇죠. 삼균주의, 맞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참 아쉬운 거죠. 더구나 이분의 집안은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열네 분인가가 적어도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으셨어요. 가족 전부 다에요, 그게요. 그렇게 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납북되셨는데, 그걸 핑계로 해서 조소앙의 역할이 우리나라에서 너무 평가가 너무 낮다 하는 점을 같이 말씀드리고 싶고요. 이 양반이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레닌과 회담도 했고, 소련의 레닌을 말하는 겁니다. 당시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였던 베르그송하고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걸 논쟁을 벌였고, 철학 아주 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삼균주의에 도달했다는 점을 같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김종배 : 지금 07**님이 문자 주셨는데요. 조소앙 선생님 기념관이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다고,

▷ 서해성 : 네. 있습니다. 맞습니다.

▶ 김종배 : 그러면서 ‘저희는 의정부 민주시민학교 헌법스터디 동아리 학생이에요’라고,

▷ 서해성 : 너무 반가운 학생입니다.

▶ 김종배 : 헌법스터디가 있네요?

▷ 서해성 :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네요. 황방리에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조소앙 선생 출생지는 아닌데, 조소앙 선생 출생은 경기도 파주에서 했습니다. 나중에 여차여차해서 이사를 가시게 된 거예요. 그 동네에 있고, 그 동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소앙 선생의 빈 무덤이 있습니다. 북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무덤이 빈 무덤이 그쪽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의복장이라고 그러는데 옷만 가지고 묻어서 장사를 치르고 빈 무덤을 만드는, 황방리에 같이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지금 조소앙 선생 말씀하다가 잠깐 끊겼는데, 이승만 정권이 끝나고 나서는 그래도 다시 복권되거나 재조명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 서해성 : 그랬을까요?

▶ 김종배 : 그게 아니었다?

▷ 서해성 : 아니. 그 뒤의 정권이 어떤 정권입니까? 박정희 정권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바로 5.16 쿠데타가 있었으니까,

▷ 서해성 : 그럴 기회가 없었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치권력이었는데, 어떻게 조소앙을 부각하고 다시 했겠습니까?

▶ 김종배 : 제가 쓸데없는 얘기했네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지금 베르그송하고 철학논쟁을 했다는 건 또 처음 듣는데,

▷ 서해성 : 네. 베르그송은 대단한 철학자거든요.

▶ 김종배 : 그럼요. 그런데 그러면 예를 들어서 이 주권불멸론, 주권재민론, 이런 것들도 그 정도로, 술술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어떤 콘텐츠와 이런 것들 갖고 계셨던 거네요?

▷ 서해성 : 제가 개인을 강조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러는데요. 이분이 우리나라 성균관을 최연소로 입학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나왔거든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사실 아닙니다. 제가 학력문제나 이런 건 얘기 안 하려고 그랬는데요. 그러니까 이분은 아주 뛰어나신 분이었고요. 그리고 당시에 있던 세계정세, 그런 것들 잘 알고 있었고요.

▶ 김종배 : 천재였구나, 천재.

▷ 서해성 : 그렇게 해버리면 또 다른 분들이 너무 똑똑하다고 해서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까, 특히 개인의 우수함을 말할 때 늘 두렵거든요. 그래서 그렇긴 한데, 하여튼 이분이 그런 뛰어난 사람으로서 당시의 세계적 수준의 헌법들을 다 이해하고 있었고, 잘 알고 있었다는 점도 같이 말씀드립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권재민이라고 하는, 근대주권론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때가 처음이라는 거예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처음입니다. 그리고 남녀차별 그리고 귀천의 차별, 빈부의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을 문서에 최초로 담은 것도 우리 임시헌장입니다.

▶ 김종배 : 기본권.

▷ 서해성 : 네. 제3조에 들어있고요. 그리고 제4조에도 표현의 자유 항목이 다 들어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항목들이,

▶ 김종배 :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요?

▷ 서해성 : 네. 다 들어있습니다. 다 들어있고 그리고 이제 제9조에는 아주 재미있는 게 들어있는데, 제9조는 문장이 짧으니까 읽어드리면 ‘제9조,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부 폐지한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이게 제가 헌법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생명형은 사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대한민국 최초 헌법은 사형제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 김종배 : 이것도 발굴인데,

▷ 서해성 : 이건 진짜 놀라운 발상입니다. 다른 나라 헌법에 이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요. 그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전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헌법은 1919년도부터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어요.

▶ 김종배 : 엄청 선진적인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이게 고도의 인권을 제가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 김종배 : 100년 전이잖아요, 100년 전.

▷ 서해성 : 정확하게 100년 전이죠. 그리고 신체형, 무슨 얘기냐면 고문이라든지 이런 어떤 신체형은 할 수 없다는 거죠. 또 하나는 중요한 말인데, 공창제, 우리는 원래 공창제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여왔던 거예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잠깐만요. 제가 무식해서 질문 드리는지, 옛날에 기생이나,

▷ 서해성 : 그건 관창이죠. 관에서 운영했던, 창이라고 부르지는 않았고요. 기생제도는 있었지만 원래 기생은 관기입니다. 관기들이 나중에 이제 사기가 되었던 거죠. 사실 우리나라 사창, 법으로 적어도 제도적으로 세금을 걷는 창기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본이 들어오면서 1916년도부터 본격화되었던 겁니다. 법적으로 세금을 받았어요. 세금을 걷었다고요, 성매매에 대해서요. 그게 나중에 일본군 위안부가 탄생하게 되는, 일본군들이 그냥 일본 위안군을 만든 게 아닙니다. 그들의 공창제도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익숙한 거예요. 한국이랑 다릅니다, 의식문화가 그러니까. 그런데 이 초대 헌법에는 공창제가 폐지되어 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잠깐만요. 지금 카카오톡으로 5번타자님이 검색하려고 하는데 검색이 안 된다고, ‘조수황 선생님 맞나요?’라고 질문 주셨는데, 조수황 선생님이 아니고요. 조소앙, 소앙, 조소앙 선생님으로 이렇게 검색을 하셔야 됩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기본권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헌법하면 우리가 다른 건 다 몰라도 4대 의무는 알고 있잖아요. 이것도 규정되어 있었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병역의무, 그런데 그 중에서 근로의 의무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그것도 사실 근로의 의무는 권리적 의무이기도 하거든요. 굳이 안 넣어도 일하고 살려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실 근로의 의무는 일을 하라는 뜻이거든요. 일을 해야 된다, 이런 뜻으로 들어있는 건데,

▶ 김종배 : 근로는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이기도 하죠.

▷ 서해성 : 네. 우리가 노동을 하는 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주로 하지 않습니까, 의무보다는? 그러니까 교육, 납세, 병역 의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근대국가의 의무는 사실 뭐냐면 자유와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서 이만큼 헌신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국가에 헌신해야 될 대목들을 명백하게 써놓은 이것도 같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근대헌법의 성질로서 전혀 문제없이 다 들어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아까 잠깐 말씀하셨던 공민이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공민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러니까 이게 우리 초대 헌법에, 제가 초대 헌법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제헌 헌법이라고 안 그러고? 제헌 헌법은 1948년 헌법을 주로 얘기하기 때문에 제가 초대 헌법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건데, 초대 헌법에는 제5조에 대한민국에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피선거권을 갖는다, 이랬습니다. 여기서 공민이란 뭐냐면 공적인 덕을 가진 자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영어로 얘기하면 시빅 버추어, 공적인 덕, 그러니까 국가를, 공동체를 사랑하는, 자기의 이익보다 공동체 이익을 조금 더 사랑하는 그런 거겠죠. 그런 사람들은 이런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들을 거기에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헌법에 이게 명시된 것도 당연히 처음입니다, 공민에 대한 표현도.

▶ 김종배 : 공민을 제가 특별히 여쭤본 이유가 해방 후에 우리가 흔히 제헌헌법이라고 부르는, 거기에 보면 그걸 기초했다는 게 유진오 박사가 기초했던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처음에는 인민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려고 하다가 이게 북에서 인민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못쓰게 됐다고 대단히 아쉬워하는 이런 기록이 있다는 얘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어서,

▷ 서해성 : 사실입니다. 현재 그 문서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 제헌헌법은 원문이 없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원문이 망실되었습니다.

▶ 김종배 : 그건 너무한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 김종배 : 아니. 그래도,

▷ 서해성 :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 김종배 : 진짜 할 말이 없다.

▷ 서해성 : 그런데 그 기초안, 초안이라 그러죠. 초안은 남아있습니다. 그건 유진오 박사가 초안을 새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런데 애초에는 이분이 거기에다가 인민이라고 표현을 했죠. 그런데 이제 그걸 매카시즘적으로 공격을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문서에 그걸 표현하지 못하고 국민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죠.

▶ 김종배 : 그렇죠. 국민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오는, 원래 국민이라는 게 황국신민의 준말이라는 게 맞아요?

▷ 서해성 : 원래 그렇게 출발한 말이죠.

▶ 김종배 : 그럼 더 쓰면 안 되는 말 아니에요, 사실은?

▷ 서해성 : 안 써야 되는 말이죠.

▶ 김종배 : 일제의 그림자가 확 담겨있는 게 국민이라는 표현이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뭐냐면 왜 이렇게 그러면 국민과 인민과 하는 문제에서 매카시즘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여기서 있는 겁니다. 우리 헌법 최초로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국민은’입니다. ‘민국은’이 아니고, 무슨 얘기냐면 국이 성립하려면 먼저 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유진오 박사께서 왜 인민이라는 말을 써야 했냐면 주체를 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국민은 먼저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성격 규정이 사실은 어려운 겁니다. 먼저 다수대중을 표현해야 그 사람들이 세운 게 국가인 거거든요. 그래야 주권재민이 성립하는데, 먼저 국민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라고 하는 세트 안에 들어있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그 표현에는 한계를 지녔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 표현을 쓰고 싶었던 거지, 이분이 무슨 공산주의자고, 빨갱이어서 그랬던 게 전혀 아니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성정부약법이라고 하는 건 뭐에요?

▷ 서해성 : 한성정부도, 우리는 임시정부가 3개가 있었습니다. 상하이에도 임시정부가 있었고, 4월 23일 날 한성, 서울에서도 임시정부가 생겼습니다.

▶ 김종배 : 1919년?

▷ 서해성 : 네. 1919년이요. 1919년에 또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또 대한국민의회라고 그래서 또 거기서도 임시정부가 생겼습니다. 그 3개의 임시정부를 합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하이임시정부입니다.

▶ 김종배 : 그렇게 되는 거군요.

▷ 서해성 : 네. 9월 달에 합쳤습니다. 9월 11일 날 합쳐가지고 새로운 헌법을 발표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개념적으로 말씀드리면 한성에서 법통을 가져옵니다. 대지의 법통이죠. 일제 치하였지만 여기서 정부를 선포했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러시아에서 했던 것은 대한국민의회였거든요. 바로 의회의 전통을 거기서 가져온 거죠. 임시정부 상하이에 없었다는 게 아닙니다. 통합의 원리가 그랬다는 겁니다. 그리고 상하이에다는 장소를 둔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3개의 임시정부를 합쳐가지고 하나의 임시정부가 되었고, 1919년 9월 11일 날 새로운 임시정부 헌법이 발표됩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게 아주 단순한 의아함이 하나 생기는데, 우리가 지금 기념하는 제헌절은 7월이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아까 처음에 말씀하시면서 공포일이 1919년 4월 11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이 날이 되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임시정부수립, 대한민국정부 수립일이죠, 사실은. 국가수립일이죠. 건국한 날이죠. 건국절 논쟁은 사실은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요, 이건 명백한 사실이 존재하는데, 왜 논쟁을 필요로 합니까? 사실이 없을 때 무슨 해석의 여지가 있는 거지.

▶ 김종배 : 논쟁은 사실 가치관 갖고 주로 붙는 거고,

▷ 서해성 : 그렇죠. 이건 명백하게 국가가 존재했고, 제헌헌법에도 명백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 김종배 :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을 갖고 따진다면 이게 되어야 되는 게 아니냐는 거죠.

▷ 서해성 : 그렇죠. 최초의 헌법이죠. 그런데 사법고시에 안 나옵니다, 그것이. 그러니까 잘 모르는 거예요, 사실은요.

▶ 김종배 : 아니.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 전문에 명기되어 있는데, 또 그건 그러면 인정을 안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 서해성 : 어느 부분에서 인정 안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된 이유가 사실 있습니다. 박정희 장군이 만든 헌법에서부터 전두환 장군이 만든 헌법까지 해서 임시정부 부분이 누락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게 오늘날 논쟁의 근거가 되는 겁니다, 사실은.

▶ 김종배 : 그렇게 되는 거군요. 지금 그 말씀하니까 사실은 그 헌법 이야기를 시작을 했으니까 좋게 표현해서 헌법 개정의 역사, 개정이라는 단어를 그냥 쓰겠습니다.

▷ 서해성 : 개정, 좋은 표현으로 굉장히 쓰시네요.

▶ 김종배 : 그렇죠. 헌법 개정의 역사가 어찌 보면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이기도 한 건데, 이건 다음 시간으로 미뤄야 될 것 같고요. 벌써 또 시간이 다 되어버렸네요.

▷ 서해성 : 그런데 이 말씀 한 가지만 꼭 드리고 싶습니다.

▶ 김종배 : 네. 마무리 말씀 좀 해 주세요.

▷ 서해성 : 조소앙 선생, 임시정부가 발표했던 임시정부 강령이라는 게 있습니다. 건국 강령, 나라를 세울 때 이렇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지침인데,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문장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대외생산기관의 공구와 수단은 국유로 하고 공용적 주요 방산은 국유로 하고, 부적자, 친일파라는 뜻이죠. 적 혹은 부적자, 적은 일본을 말하는 겁니다. 일체 소유 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 이런 표현들이, 국유라는 표현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조소앙 선생은 한 번도 사회주의자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김구 선생이 허락해서 쓴 거거든요. 김구 선생이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잖아요.

▶ 김종배 : 그럼요.

▷ 서해성 : 그런데 대부분 국유라는 표현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자산은 다 그 당시 일본이나 친일파가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차배한다고 봤던 겁니다, 국가 차원에서.

▶ 김종배 : 적산 몰수죠.

▷ 서해성 : 적산 몰수입니다. 완전히 몰수한다, 이런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고 적산을 불하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오늘날 이런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던 건국 강령, 그런 기초 하에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1948년대 새로 수립됐어야 했는데, 정부가 수립됐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던 역사를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늘 방송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생일입니다. 참여 인원 200만이나 되었고, 학살당한 사람이 7,500명, 투옥자만 해도 5만 명에 이르는 피로 만들어진 생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임시정부를 탄생시켰고, 임시정부를 구체적으로, 문헌적으로 남기게 된 것이 바로 임시헌장이라는 것입니다. 임시헌장은 단지 건국에 대한 지침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존립케 하는 인권선언이기도 하다 하는 점에서 같이 오늘 열 줄밖에 되지 않으니까 인터넷 검색으로라도 한 번 우리 임시헌장 한 번 읽어 주십사, 그것을 제헌절을 쇠는, 맞이하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김종배 : 10개 항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서 오늘 박학다설은 일단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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