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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서해성 “촛불이 만든 정부, 국민이 주체인 촛불 우표 만들자
최양지
tbs3@naver.com
2017-07-22 11:25
서해성 작가(사진=연합뉴스)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7. 7. 21. (금) 18:00~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서해성 “촛불이 만든 정부, 국민이 주체인 촛불 우표 만들자”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폭염에 잘 지내고 계시죠?
▷ 서해성 : 더위 먹었습니다.
▶ 김종배 : 더위 잡수셨어요? 풀어야죠. 시원한 수박화채가 직방일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더위 조심하시고요.
▶ 김종배 : 제가 직접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꼭 챙겨드시길 바랍니다.
▷ 서해성 : 오늘 방송이 수박화채 같은.
▶ 김종배 : 당연히 그래야죠. 오늘 우표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이게 얼마 전에 있었던 이른바 박정희 우표가 취소된 일이 있었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구미시가 반발을 하고 있고, 바로 이것 때문인데요.
▷ 서해성 :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손 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에 일어난 우표 사건이다.
▶ 김종배 :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요즘 우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서해성 : 그런데 거기에서 동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우표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정말 과거를 그리워하는 구나’, 어떤 향수 같은, 권력에 대한 향수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고요. 또 한 번 자부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 김종배 : 어떤 자부심?
▷ 서해성 : 그것을 저지시킨 시민들의 힘, 그게 역시 놀랍구나. 그러면서 한국인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 언제나 의견이나 의사소통이 똑같을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더 올바른 생각이 어떤 사람들의 권력욕 혹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꺾는구나 하는 것 때문에 한국에서 오랜만에 자부심을 가진 주간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게요. 이게 계속 어느 한쪽의 반발, 그런 것에서 뉴스가 됐었는데요. 일반화해서 기념우표잖아요, 기념우표. 우리나라에도 기념우표가 상당히 많이 있었죠?
▷ 서해성 : 자료를 조사해봤더니 3,508회나 발행이 되었더라고요. 종합적 우표가 다 해서요.
▶ 김종배 : 그렇게 많이 발행했어요?
▷ 서해성 : 우표를 지금까지 발행한 것을 다 해서요. 그러니까 엄청난 숫자의, 종류의 우표가 발행되었다.
▶ 김종배 : 저는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우표는 우표가 아니라 연말 되면 파는 크리스마스 씰 있죠. 그리고 아무튼 그리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정식우표는 무궁화 새겨진 우표라든지 새가 그려진 우표,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요.
▷ 서해성 : 일반우표들이죠.
▶ 김종배 : 일반우표죠, 그건.
▷ 서해성 : 혹은 태극기가 있다든지.
▶ 김종배 : 그렇죠. 어떤 인물을 기념한 우표는 사실은 저는 기억 속에 거의 없거든요. 그 기념우표에 등장한 인물들, 어떤 인물이 있었던 겁니까?
▷ 서해성 : 우선 소개를 해드리자면 독립운동가를 해서 우표로 만든 우표는 17종이 있더군요.
▶ 김종배 : 3천 몇 종 중에요?
▷ 서해성 : 네, 그런데 인물은 8명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김구 선생이 4번 발행되었고요. 안중근, 이준 열사가 3번, 3종이죠. 그리고 윤봉길, 안창호 선생이 2종, 그리고 유관순, 이봉창, 서재필 선생이 각각 1종씩 발행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독립운동가들을 다뤘을 때는 그렇고요. 그리고 탄생 100년, 혹은 150년.
▶ 김종배 : 꺾어진 해.
▷ 서해성 : 그렇게 해서 기념을 발행한 것은 6종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국인은 세 사람이었습니다. 이것도 재미있죠. 6종이면 대부분이 한국인이어야 될 텐데.
▶ 김종배 : 국내에서 만든 우표인데 한국인이 반밖에 안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네, 그런데 그중에 세 분이 누구냐면 윤봉길 의사 탄생 100년, 그리고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서, 우당 이회영 선생 혹시 모르실 분 있을까봐 말씀드리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신 분이죠.
▶ 김종배 : 일전에 한 번 이 시간에 쭉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죠.
▷ 서해성 : 그리고 이중섭 화가, 이렇게 세 분이 선정이 되었고요. 그리고 외국인이 3종인데 아주 재미있는데 우리가 다 아는 슈바이처 박사 그리고 맹인들을 위한, 눈이 안보이시는 분들을 위한 점자를 개발하신 루이 브라유라고 하는 분, 이런 분들은 인류에 공헌했다. 흔히 말할 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휴머니즘에, 인도주의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한 분이 독특한 분이 있는데 독일정부하고 공동으로 발행한 문인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독일문화원 이름이 괴테문화원이지 않습니까? 독일어 그러면 곧 괴테라고 할 정도인데 우리가 괴테우표를 발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기념관에 찾아갔을 적에 제가 한 번 가본 게 아니고 두세 번 가봤거든요. 이 우표를 찾아보려고 굉장히 노력했는데.
▶ 김종배 : 없었어요?
▷ 서해성 : 저는 못 찾았습니다. 아마 다른 데 있었겠죠.
▶ 김종배 : 한국과 독일이 공동발행까지 했는데 이게 없다는 말이에요, 괴테기념관에?
▷ 서해성 : 하여튼 제가 현재는 못 찾았는데 혹시라도 독일문화원 관계자가 이 방송을 들으신다면 제 시력이 나빠서 못 찾은 것으로 해 주시고 한국과 독일이 오랫동안 친교해온 역사가 그 우표에 담겨있지 않은가,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제가 한국인이라서 정말 자부심을 가졌을 때가요, 한국에서 대영제국박물관 이렇게 부르는, 정확하게는 영국국립박물관이죠. 대영제국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나쁜 말이죠.
▶ 김종배 : 영국에서나 써야 될 표현이죠.
▷ 서해성 : 그렇죠. 우리는 쓸 이유가 없는.
▶ 김종배 : 우리는 그렇게 쓸 이유가 없는 거지.
▷ 서해성 : 거기에 갔는데 아시아관에 갔습니다. 그 당시에 갔을 적에 첫 번째 ‘아시아 유물 중에 가장 위대한 유물이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어더라고요.
▶ 김종배 : 뭔데요?
▷ 서해성 : 복사본이었어요, 더구나. 그게 바로 직지였습니다. 원본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도 사실 청주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영인본 직지가 거기에 있을 때 정말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처럼 독일 괴테기념관에서도 한국에서 만들어낸 우표가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봅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탄생 100주년 내지 150주년 기념우표를 말씀하셨는데.
▷ 서해성 :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80주년에도 찍어내셨고 81주년에도 찍어내신 분이 있습니다.
▶ 김종배 : 누군데요?
▷ 서해성 : 설명이 거의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 김종배 : 누군지 대충 감 왔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 얘기하는 거죠?
▷ 서해성 : 네. 이 분은 이제 우표만 찍어내신 게 아니고 당시에는 동상도 세운 적이 있었죠.
▶ 김종배 : 자기가 재임 중에, 대통령 재임 중에?
▷ 서해성 : 네, 남산에서 세운 게 가장 큰 건데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높은 동상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것은 좀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김일성이 살아서 동상 세웠을 때 그것을 참 보기 싫었잖습니까, 우리가? 그런데 이승만도 세웠죠. 먼저 세웠을 겁니다. 시기적으로는 정확하게 56년도에 세웠기 때문에요. 그 자리가 사실 더 꼭 기억하실 필요가 있는 것이 그 자리가 바로 일제 때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하고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일제 때 일본의 국가신앙, 신궁의 그 이미지를 이승만이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면요, 그 동상을 동상건립위원회가 있었지 않겠습니까?
▶ 김종배 : 있었겠죠.
▷ 서해성 : 동상건립위원회가 있었는데 이 동상을 먼저 외상으로 세웠습니다.
▶ 김종배 : 돈 안 주고?
▷ 서해성 : 네, 완공을 58년도인가 했거든요. 문제는 그 돈을 다 갚지 않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안 갚았다는 것이 공식적 기록으로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 김종배 : 떼먹었다는 겁니까?
▷ 서해성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떼먹었는지.
▶ 김종배 : 아니, 그런데 그때 아시아 가장 최대 동상이었다면서요? 제작비가 상당했을 것 아니에요? 그 업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 서해성 : 그 다음까지는 모르겠고 그 돈을 동상업자가 받지는 못 했다. 완납하지 못했다.
▶ 김종배 : 요즘 이야기로 갑질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건데,
▷ 서해성 : 그렇죠. 우표 이야기 하다보니까 생각이 나서,
▶ 김종배 : 알겠습니다. 다시 우표 이야기로 돌아가서 탄생 100주년, 150주년 기념하는 우표인데 이번에 박정희 우표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이런 취지였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건 어떻게 봐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아까 얘기했던 것이 한국인 중에 고작 세 분 정도가 윤봉길, 우당 이회영, 이중섭, 이런 정도의 분들인 거죠. 두 분은 독립운동가시고 한 분은 예술가이시고, 한 개인이 선정되었다기보단 예술가 전체를 대표한 거예요. 그러면 과연 정치를 했던 사람, 특히 한국에서 공화정을 아예 깨뜨렸던, 쿠데타죠. 쿠데타를 했던 사람이 우표인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고요. 견해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대통령 통치하는 기간 동안, 18년 5개월 10일 17시간 동안 통치했거든요, 박정희 씨가. 그런데 통치하는 기간 동안에 한국인들에게 보여줬던, 자기 국민들을 학대했던 장기간에 걸친 폭압적 통치, 이런 것들로 봤을 적에 과연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다투는 문제이고요. 만약에 한국인들이 상당수들이 그것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찍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해서 말할 수 있고요. 또 하나는 이분이 살아생전에 우표를 이미 많이 찍었다는 점입니다.
▶ 김종배 : 그랬나요? 얼마나 찍었는데요?
▷ 서해성 : 박정희 대통령이 찍은 우표가 23종입니다. 자기 얼굴이 들어간 우표가 23종입니다.
▶ 김종배 : 그 23종도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 재임기간일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네, 재임기간동안 찍은 걸 얘기한 겁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18년 재임이니까 1년에 1종 이상씩 찍어냈네, 평균적으로.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니까 너무 섭섭해 하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외국에 나갈 때, 외국원수가 방문할 때도 찍었고, 새마을운동 홍보하느라 찍었고,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돌아가셨을 때 그때도 찍었고,
▶ 김종배 : 이때도 우표를 찍었어요?
▷ 서해성 : 제가 우표를 확인하고 이 방송을 하는데,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그렇게 해서 찍었습니다. 이분이 순방우표, 외국을 돌아다닐 때 했던 우표의 원조이십니다.
▶ 김종배 : 저는 이게 왜 어떤 맥락인지 조금은 어슴푸레하게 기억나는 게 저 어릴 때 대통령이 해외 나가서 외국대통령 한 번 만나서 악수했다면 그건 국가대사였어요.
▷ 서해성 : 그러니까요. 지금 분들은 모르시는 거예요.
▶ 김종배 : 하루 종일 TV에서 보도 나오고 보도특집 이런 것 나오고 했던 딱 그 맥락이잖아요.
▷ 서해성 : 네, 그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국가영향력이 굉장히 미미했고 외교력이 없었다보니까 외국 국가원수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주로 만나던 국가원수는 미국 아니면 일본, 대개 아시안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분들하고 만나는 것도 굉장한 일이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얼마나 외교를 잘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의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죠. 사실 외교를 잘하면 알릴 필요가 없죠.
▶ 김종배 : 저 학교 다닐 때 대통령이 순방하고 돌아올 때 카퍼레이드 하면서 나가서 학생 동원되어서 태극기 흔들고, 외국원수가 들어오면 카퍼레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는 길에 도열하게 만들어서 태극기하고 그 나라 국기 흔들게 만들고,
▷ 서해성 : 순방에서 갔다 오면 귀국하신다고 하면서 학생들 전체 나가서 꽃가루 뿌리고 그런 일을 했던, 바로 이런 것하고 연관이 되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바로 재임기간동안 순방우표를 만든 최초의 기원이다. 이승만도 적지 않게 찍었습니다. 10종이나 찍었습니다, 자기 얼굴이 들어간.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우표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짐작하실만한 우표들인데 이분이 1950년 11월 달에 통일기념우표를 찍었습니다. 통일이 됐다는 겁니다.
▶ 김종배 : 진짜요? 몇 년도에 찍은 건데요?
▷ 서해성 : 50년 겨울에요.
▶ 김종배 : 한참 전쟁할 때잖아요?
▷ 서해성 : 우리 국군이 38선을 밀고 올라갔기 때문에,
▶ 김종배 : 압록강까지 민,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진 있잖아요. 국군이 수통으로 압록강 물 담는, 이때 얘기하는 거죠?
▷ 서해성 : 네, 통일이 된 것처럼 찍은 거예요.
▶ 김종배 : 통일이 됐다고 가정하고?
▷ 서해성 : 아니요. 국가의 행위는 가정은 없다고 봐야 되거든요.
▶ 김종배 : 당연하죠.
▷ 서해성 : 우리끼리는 가정이 가능하지만 더구나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거든요. 거대한 집단의 의사결정인데 통일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우표를 발행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1월 4일 날 1.4후퇴를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미국 가서 장진호 이야기를 하셨는데 바로, 서울에서 일어난 게 1.4후퇴죠.
▶ 김종배 : 다른 우표는 솔직히 어떤 디자인인지 궁금하지 않은데 통일기념우표는 꼭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
▷ 서해성 :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 방송을 들으시다가 휴대전화나 혹은 검색을 해보시면,
▶ 김종배 : 나오나요?
▷ 서해성 : 나옵니다. 1950년 11월 20일 날 발행한 우표가 남아있습니다.
▶ 김종배 : 역대 대통령 가운데 기념우표를 가장 많이 찍은 대통령이 누구에요?
▷ 서해성 : 쭉 들으시면 알겠지만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서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일 적에, 전두환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고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일 적에,
▶ 김종배 : 몇 종이나 찍었어요?
▷ 서해성 : 30종이나 찍었습니다.
▶ 김종배 : 많이도 찍었다.
▷ 서해성 : 이분이 8년 동안 최고권자에 있었으니까 해마다 몇 장씩 찍었다.
▶ 김종배 : 8년이니까 80년이면 거의, 구구단이 왜 갑자기 막히지, 넘어가요. 그러면 30종중에 주로 어떤 종류인데요?
▷ 서해성 : 당연히 이분이 찍은 게 해외순방, 이런 것 많이 찍었는데요. 그 당시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우표를 많이 찍었습니다. 정통성이 있으면 자기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우표를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 김종배 : 그렇죠, 마음속에 새겨져있는데.
▷ 서해성 : 합법적으로 누구나 다 진짜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 양반이 남긴 세계적인 기록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이 양반이 1983년도에 서남아시아하고 대양주, 이런 나라들, 호주, 뉴질랜드, 인도, 스리랑카, 브루나이, 미얀마, 요즘의 미얀마(버마), 이런 데를 방문하도록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미 먼저 순방기념우표를 발행했어요. 원래 가기 전에 찍는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래서 아웅산테러사건,
▷ 서해성 : 그것 때문에 못 가게 됐죠. 우표는 이승만 하고 똑같은 거죠. 이승만은 통일됐다고 통일기념우표를 발행했는데 전두환은 당시에 아시안과 대양주로 가는 여행객을 세워놓고 우표를 발행한 거죠. 발행했는데 원래 며칠 전에 발행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미얀마, 지금의 버마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함으로서 그 우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거죠. 우표는 사용했죠.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짜우표, 거짓말우표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 김종배 : 그리고 최근에 오면 어떻게 됩니까?
▷ 서해성 : 최근에도 기념우표를 발행했는데 대표적인 게 사대강기념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 김종배 : 그래요? 사대강기념우표가 있었어요?
▷ 서해성 : 네, 제가 그것도 찾아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이명박 정부 때?
▷ 서해성 : 굳이 이름은 얘기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조금 놀라운 게 그 당시에 반대도 굉장히 많았는데 굳이 사대강을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는지 생각이 들고요. 나머지 대통령들은 모두 1회씩 발행했습니다. 정상적인 대통령들은 1회씩 발행했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만 2회를 발행했습니다.
▶ 김종배 : 왜요?
▷ 서해성 : 그때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 김종배 : 노벨평화상 탔었으니까?
▷ 서해성 : 네, 나머지 모두 다 한 번씩 발행해서 그게 정상적인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지금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 국가기념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중에는 아주 뜻 깊은 기념일이 있는데 광복절 같은 경우 어떻게 보면 국가가 발행하는 기념우표 이런 것부터 발행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서해성 : 네, 해방 후 최초로 발행한 우표가 바로 해방조선기념우표입니다. 광복절은 아닌데 광복절하고 관계있는 거죠. 그게 46년도에 찍었는데 그 우표는 일본에서 찍어왔습니다.
▶ 김종배 : 해방기념을 일본에서 찍어왔어요? 그때 우표 찍을 인쇄 저기가 안 되어 있었나요?
▷ 서해성 : 어느 정도 수준에서 찍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 당시에 최고책임자였다고 한다면 저는 일본에서 안 찍었을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해방기념우표인데,
▷ 서해성 : 그런데 우리는 지폐도 일본에서 찍어왔습니다. 해방이 된 뒤에도요. 유통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나라 정부 이름으로 정식적으로 최초로 발행한 지폐가 1950년 6월 12일 날 처음 발행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발행할 때 그 지폐도 일본에서 찍어온 지폐였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시중에서 유통은 안됐고,
▷ 서해성 : 전쟁이 났으니까요.
▶ 김종배 : 그렇죠. 전쟁 나기 13일 전이네요.
▷ 서해성 : 인쇄는 됐는데 은행권은 발행이라고 표현합니다. 유통이 되어야 발행이라고 하는데 발행을 하지 못했죠.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찍었던 돈을 그 뒤로 계속 사용했고 첫 번째 돈을 찍어냈는데 거기에 각하 얼굴이 들어갔죠, 이승만 얼굴이 들어간.
▶ 김종배 : 갑자기 쓸데없는 게 궁금해지는데 요즘 인터넷 보니까 동전, 몇 년도에 만든 10원짜리 동전이 지금 몇 십만 원 받고 이런다던데,
▷ 서해성 : 그렇죠.
▶ 김종배 : 그러면 이때 그 지폐를 하면 그것도 되나?
▷ 서해성 : 몇 백만 원 쉽게 될 겁니다.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구경도 못해봐서, 시중에 유통이 안됐으니까 전량폐기가 됐다고 봐야 되나요?
▷ 서해성 : 그럼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언젠가 한번 우리나라 돈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종배 : 그 전에 한 번 2만 원짜리를 발행해서 안중근 의사를 화폐 속의 인물로 해보자고 그때 제안을 하신바가 있는데 화폐 2탄 한번 해보죠.
▷ 서해성 : 돈의 역사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돈의 역사가 얼마나 모욕적인가’ 그런 얘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로 광복절이 주로 군사쿠데타를 했던 두 사람 박정희, 전두환에 의해서 많이 이용당했습니다, 광복절기념유표가. 짐작이 가시죠?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 보니까 기념우표도 많이 발행했고 광복절도 많이 이용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광복절 기념한 것 말고 또 다른 걸 기념하는 우표가 어떤 게 있습니까?
▷ 서해성 : 지금 들으면 참 웃음이 나오는 우표를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 헬리콥터 헌납기금 첨가우표라는 게 있었습니다.
▶ 김종배 : 무슨 말이에요, 그게?
▷ 서해성 : 헬리콥터를 국민이 사주자는 겁니다, 우리 국군에게. 그게 우표로 발행이 되었고요. 그게 정상적 일반우표가 아니고 기념우표의 한 형식인데 첨가우표, 무슨 얘기냐면,
▶ 김종배 : 첨가우표?
▷ 서해성 : 10원짜리 우표를 붙이고 옆에 다시 첨가해서 붙이는 거죠, 크리스마스 씰처럼.
▶ 김종배 : 그렇죠. 우표 여러 장 붙이는,
▷ 서해성 : 네, 첨가우표로 발행이 됐는데 많이 팔렸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 상황이 울진삼척지구, 이런 상황이었고 1.21사태가 나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우표를 열심히 사서 붙였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우표를 꼽아야 되는 게 가족계획우표가 있었거든요. 제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 김종배 :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서 기르자.
▷ 서해성 : 네. 그렇게 붙어 있었어요, 표어가 아예. 우표가 그렇게 하면 기니까 거기에 들어가는 글자는 네 글자인데 ‘둘만 낳자’,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를 줄이면 ‘둘만 낳자’잖아요. ‘둘만 낳자’는 표어가 들어가 있는 우표가 수십 년 동안 유통되었죠. 그때 기억나시지 않습니까? 제가 예비군훈련 받을 때도 동원 예비군훈련이 5박 6일이었는데요.
▶ 김종배 : 수술 말씀하시려고?
▷ 서해성 : 네. 정관수술을 하면 퇴소시키는, 불을 깐다고 동물에게는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형태로 일종의 거세죠. 일종의 거세가 아니라 거세죠. 그렇게 해서 출산율을 줄이려고 굉장히 애를 썼는데 사실은 전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 김종배 : 지금 와서 저출산 때문에 국가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 서해성 : 그러다가 2008년에는 출산장려 우표가,
▶ 김종배 : 이때는 또 반대로?
▷ 서해성 : 쌍둥이를 넘어서 다둥이라고 하는 우표가 발행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새마을우표라든지 이를테면 이런 것들 널리 사용했는데,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런 것들 당연히 정권의 개도용으로서, 국민통치수단으로서,
▶ 김종배 : 국민의 개도라든지 선전이라든지 우표가 이런 용도로 활용이 되었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 서해성 :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아시겠지만 지금 이런 얘기 들으면서 ‘우표가 뭐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겠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 시대에는 인쇄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진짜로요, 제가 그때 편지를 받잖아요.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표도 오려서 보관하고 그랬어요.
▷ 서해성 : 지금 분들은 잘 모른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때는 그랬어요. 그래서 우표 모아서 팔기도 하고 그랬어요.
▷ 서해성 : 학교 가서 방학숙제 중에 우표 모아오기도 있었고요. 그때는 그런 색이 있는 작은 정교한 인쇄물을 일반인이 거의 만져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라는 형식이 당시에는 오늘날 이메일과 전화와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것으로서의 미디어가 편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국에 있는 신문을 보는 사람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이런 모든 것의, 지금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것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왼쪽 모퉁이 위에 컬러로 되어 있는 어떤 인쇄물이 붙어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밥풀로 붙이지 않아도 되고 침만 살짝 바르면 붙는 그런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컬러 인쇄물인데 뭐라고 써있는 거예요, 내용이 있는 거죠. 아마 편지가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 외국인도 똑같습니다. 편지가 일종의 가슴에 전달되는 것이었거든요, 단지 글자만 전달되는 게 아니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 인쇄물이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 끼쳤을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종배 : 저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때 어린이청소년 잡지가 몇 종이 있었는데 맨 뒤에 보면 ‘펜팔합시다’해가지고 우표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펜팔 아닙니까? 그때는 국제펜팔도 있었고 국내펜팔도 있었는데 어린이잡지 맨 뒤에 보면 ‘펜팔합시다’해서 서울에 사는 아무개, 이런 것 나오고 했잖아요. 그래서 편지보내고 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 서해성 : 편지의 소중함 같은 것들, 지금의 비중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지금 편지가 사실상 전멸되어 버린 세상입니다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편지가 중요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요.
▶ 김종배 : 마무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기념우표 이야기를 쭉 했잖아요. ‘기념우표라고 하는 것들은 그러면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되느냐’라고 하는 문제, 왜냐면 박정희 우표가 논란됐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요즘 우표 쓰는 사람도 없고 이건 교과서하고 다르지 않느냐? 국정교과서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이 다 봐야 되니까 문제지만 우표는 안사면 그만 아니냐? 뭘 그걸 가지고 논란 빚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제가 봤거든요. 어떤 관점을 해서 이 기념우표 논란을 봐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명료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국가단위에서 뭘 기리고 할 때는 헌법정신에 과연 충실한가, 그리고 헌법의 가치를 잘 계승할 만한 사람인가를 판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종배 : 국가에서 발행하는 거니까.
▷ 서해성 : 네. 지폐든 화폐든 우표든 혹은 기타 여러 가지 인물을 선정할 때 그러면 문화체육부 혹은 이런 데에서 인물 선정하는데 독립운동가 선정하고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 세월 지났는데 독립운동 약간 하다가 친일한 사람도 선정하고 해야죠, 그렇게 따진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국가는 어떤 가치체계 위에 서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가치체계는 명료하게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독립운동이고 하나는 민주화운동입니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1조도 아니고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기념을 한다면 거기에 부합되는 내용이 기념이 되어야 한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선정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절대 해당될 수 없다’라는 것이고요. 또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우표나 이런 기념에서 사실은 보통사람이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 김종배 : 한 번도 없죠.
▷ 서해성 : 너무나 높은 권력자들만 누려왔다는 겁니다. 사실은 이번 문재인 정부, 새로운 민주정부에서는 그 촛불정신을 받아들여서 가령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습니다. 널리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하나는 우표로 촛불을 발행해보고.
▶ 김종배 : 저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 서해성 : 촛불을 우표에 넣어보고, 디지털우표도 사용할 수 있거든요. 디지털우표를 정부가 발행하는 거죠. 비록 돈을 내지는 않지만 그 디지털우표를 사용해서 그 가치를 이어가는 이런 형태의 생각을 조금 더 창조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겠다. 촛불이 만들어준 정부인만큼 그 촛불의 가치, 가령 이게 뭐냐면 그 우표의, 그 국가의 핵심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주체를 표현하는 일입니다. 그 주체가 누구입니까? 국민입니다. 그런 쪽으로 기념사업이나 기념우표나 이런 것들을 이행해갔으면 하는 열망도 같이 갖습니다.
▶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함께 공유하면서 오늘 <박학다설>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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