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뉴스공장> 한홍구 “김기춘은 유신헌법 기안자, 한국 현대사 주요장면마다 나오는 포레스트 검프 같아”

김현지

tbs3@naver.com

2016-11-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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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연합>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연합>
  • * 내용 인용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제1공장]
    차은택이 지목한 김기춘... 법 주무르며 누린 40년 권력
    - 한홍구 교수 (성공회대)


    한홍구 “김기춘은 유신헌법 기안자, 한국 현대사 주요장면마다 나오는 포레스트 검프 같아”


    김어준 뉴스공장 오늘 첫 인터뷰 시간입니다. 최순실 정국 이후에 언론에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 중 하나지만 검찰 조사는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오늘은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계속 이름이 거론되는 이 김기춘 탐구를 해볼까 합니다. 작년에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쓰시면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위해 아예 한 챕터를 떼어내서 정리를 하신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김어준 : 안녕하세요.

    한홍구 :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1년 후에 일어날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쓰신 거예요?

    한홍구 :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김어준 : 책을 쓰셨는데, <역사와 책임> 맞죠? 작년에 쓰셨는데. 아예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한국사의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하시다가 김기춘 장이 따로 있습니다. 왜 한 챕터를 한 사람에게 할애하신 거죠?

    한홍구 : 신문에 두 면으로 실렸던 글인데요. 기자들하고 같이 술자리를 하다가 김기춘 얘기가 나와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쭉 얘기를 했더니 그 얘기를 글로 안 쓰고 뭐하냐고 해서 그날 밤에 들어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확인을 해가면서 정리를 했더니 하룻밤에 120장이 나왔어요. 신문에 다 쓸 수는 없으니까 줄여서 60장으로 광고 없이 두 면을 채워서 썼고요. 그걸 하고 나서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김기춘처럼 오랫동안 역할을 하진 않았어도 한국사 구비구비에 주요한 악역을 했던 사람들 역사를 정리해보자. 그래서 그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으로 시작이 되어서 거기에 일부분 제가 썼던 케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어준 :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이라는 집필을 하고 계신 거죠.

    한홍구 : 저 혼자는 아니고 여러 분들을 모시고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중에 아이러니컬한 게 김기춘의 별명이 미스터 법 질서거든요.

    김어준 : 본인이 그렇게 정한 건가요?

    한홍구 : 본인이 그렇게 정한 건 아니고 한참 잘 나갈 때 모든 사람들에게 법을 지켜라, 법을 지켜라라고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의 민낯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법을 어겨가면서 국민에게 법 질서를 지키라고 하는 것. 사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들에게 법을 지켜라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시민들이 권력을 위임한 자들에게 너희들 법대로 해. 라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김어준 : 거꾸로 되어 있는 거군요. 자, 그러면 기자들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본인도 한 챕터를 따로 할애할 정도로 구구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과 맞닿아 있는데 첫 번째가 유신 때부터 역할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그 사람이.

    한홍구 : 유신 때는 김기춘이 아주 젊은 30대 초반의 검사였는데 신직수라고 있습니다.

    김어준 :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출신...

    한홍구 : 박정희 식의 장관급만 17년을 지낸 사람인데 거기에 발탁이 되어서. 그 법무장관을 할 때 검사로서 신직수를 도와서 아주 은밀한, 유신 헌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박정희가 구상했다면 그걸 법조문화하는 작업을 같이 했습니다.

    김어준 : 유신 헌법의 기안자와 마찬가지겠네요.

    한홍구 : 실무 기안자.

    김어준 : 실무 기안자. 네, 사실 많이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리고 나서 유신 헌법이 선포되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드리면 유신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는 거죠. 그리고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정합니다.

    한홍구 : 대통령 중임제기 때문에...

    김어준 : 계속 할 수 있는 거죠. 영구 집권하려는.

    한홍구 : 그 공로로 김기춘이 4년 선배들을 제치고 법무부 과장급으로 승진을 하는데. 맡은 직함이 인권 옹호 과장이었습니다.

    김어준 : 인권 옹호 과장. 네. 유신 헌법 초안을 마련해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그리고 또 다시 등장하는 것이 신직수 말씀하셨는데. 중정부장과 법무부 장관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법을 관장했던 분이죠, 사실상. 공안 헌법을 담당했던 분인데. 중정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습니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 시절 얘기를 좀 해주시죠.

    한홍구 : 처음에는 신직수가 법무부 장관을 하다가 중정부장이 될 때 법률보좌관으로 따라갔는데. 그런데 중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게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육영수 여사가 그날 돌아가셨는데 사실은 그 육영수 여사가 누구 총에 돌아가셨는지 잘 몰라요.

    김어준 : 지금도 그게 논란거리죠.

    한홍구 : 국정원 과거사를 할 때 파헤쳐볼까 했는데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손을 못 댔는데. 추측으로는 문세광이가 총에서 나간 총알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다 밝혀졌거든요. 그러면 문세광 총이 아닌 다른 총인데. 아마도 추측하기에는 경호원이 문세광을 제압하려고 쏜 총이 하필 육영수 여사를 맞혀서 비극적 사태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데 공식적으로 문세광이 쏜 것이 됐죠. 그런 식으로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 사건을 덮어버린 수사 책임자가 김기춘입니다.

    김어준 : 그래서 자백을 받아냈던...

    한홍구 : 자백을 받아냈다고 김기춘 본인이 얘기를 하는데.

    김어준 : 본인의 공 중에 가장 중요한 공으로 얘기하는.

    한홍구 : 이 글을 쓰면서 그 신문을 뒤져봤더니 김기춘이가 투입되기 이전에 벌써 문세광의 신원이 나와서 네가 자칼이냐, 그래서 자칼이라 하면 그때 유명한 소설이 있었거든요. 드골 암살 사건인데. 그걸 자기가 읽어놓고는 그걸로 얘기하니까 문세광이 반색을 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하는 스토리가 있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벌써 중요한, 문세광의 신원에 대해서는 다 나왔었던 걸로.

    김어준 : 그 스토리는 그럼...

    한홍구 : 이런 걸 자가발전이라고 하죠.

    김어준 : 자가발전. 하하. 중요한 본인의 공으로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육영수 암살범 문세광의 자백을 내가 받아냈다. 이거였는데 그때 당시로 돌아가 사료를 보면 그 이전에 이미 나왔고.

    한홍구 :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박근혜와의 관계가. 칠인회라는 게 잊지 않습니까. 그 원로 그룹 중 한 명이었다고 하는데. 그 원로 그룹들하고 맺은 관계가 다른 여섯 명과는 달리. 이미 박근혜의 20대, 김기춘의 30대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은인으로 시작했기에. 다른 사람과는 격이 다르지 않았나 하는.

    김어준 : 그 시절에 이미 우리 엄마를 저격한 원수를 잡아낸 사람이다. 이렇게 20대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에 각인되었다는 거죠. 관계는 그때부터 맺어졌고.

    한홍구 : 그렇죠.

    김어준 : 굉장히 오래됐군요. 그리고 나서 공을 두 번째로 세운 거 아닙니까. 첫 번째는 유신 헌법을 기안하면서 기수를 뛰어넘어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당시 법무부 장관을 하던 신직수가 중정부로 데려가고.

    한홍구 : 신직수와 김기춘이 처음 인연 맺은 건 언제냐면. 김기춘이 정수장학회, 5.16 장학회 1기생이에요. 재밌는 게 고등고시를 합격한 다음에 장학생으로 선정됐으니까 사실은 5.16 장학생을 만든 장본인이 신직수였는데 그 때부터 눈여겨보고 키웠던 거죠. 그래서 신직수의 심복으로 박정희 신화의 일조한 겁니다.

    김어준 : 그렇군요. 그리고 나서 정수장학회 장학생들의 모임을 승모회라고 알고 있는데.

    한홍구 : 삼청회.

    김어준 : 승모회는 뭡니까, 그러면?

    한홍구 : 승모회는 육영재단에 만들어졌던 게 있고. 김기춘이가 회장을 했던 건 삼청회입니다.

    김어준 : 그렇습니까. 잘못 알았네요. 어쨌든 그 시절부터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과 굉장히 밀접하게 정서적으로 법적으로 연결되고요. 그 체제를 지탱하는 법안을 기안하고 어머니를 저격한 사람을 잡아내고. 그 사람을 잡아낸 건 과장이라고 하셨는데. 그리고 나서 신직수 당시 중정부장이 본인이 총애하던 이 양반을 대공수사팀으로 데려갔는데 이 문세광 건으로 승진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한홍구 : 중정부 대공수사국장이라고 통칭 불렀는데. 지금 남산에 가면 유스호스텔 건물 있지 않습니까. 안기부 남산 별관이라 하는데 그 뒤쪽으로 가면 거의 그것만 건물이 하나가 또 있죠. 4층 건물이 하나가 있는데 그게 대공수사부 건물입니다.

    김어준 : 지하실에 가면 사람들 죽어나온다는.

    한홍구 : 예, 그 대공수사국이라는 게. 중정부 안에 거의 뭐 직원들 3분의 1내지는 절반,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를 가진 부서인데 거기의 수장이 되었고요. 거기의 권한이 뭐냐면 보안사, 대공경찰, 뭐 그런 여러 방첩기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기관들을 전체적으로 통괄했는데요. 이 시기가 중요한 게 뭐냐면 본격적으로 조작 간첩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영화 자백에 주연 배우로 등장하셨지 않습니까.

    김어준 : 네.

    한홍구 : 그 시기가 왜 중요하냐면 북에서 간첩을 안 내려 보내요. 남쪽에는 간첩 잡는 기관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었는데. 간첩을 왜 안 보냈냐면 보통 책에 보면 7.4 남북공동협정을 맺어서 안 보냈다 하는데 그건 다 거짓말이고요. 간첩을 내려 보내던 사람이 누구냐면 한국 전쟁 때 의용군으로 월북한 사람들인데 시간이 벌써 20년 지나니까 내려와서 적응이 안 되고 어리버리하단 말이에요. 친구들끼리 얘기하다가 맥락 못 잡고 엉뚱한 얘기하면 저거 간첩 아냐, 이러던 시절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니까 간첩을 보내봤자 소용이 없으니 못 했는데, 간첩을 안 보내는 건 대한민국 안보에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간첩을 잡는 사람들의 직업 안보에는 결정적인 문제다 보니까. 안 내려 보내면 우리가 만든다, 이렇게 되요. 그래서 간첩의 성적이 50년대 60년대에는 메이드 인 노스코리아인데. 70년대 김기춘 대공수사국장을 맡으면서부터는 메이드 인 사우스코리아, 메이드 인 재팬. 납부 거부하고 용사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조작 간첩 만드는 바로 그 시기의 원조입니다.

    김어준 : 유명한 사건이 많아요. 재일동포 유학생의 10%가 다 간첩이다, 그래서 최근에 뭐 19년간 간첩으로 수감되어 있던 10여명이 최근 모조리 무죄 판결 받고. 그 분들이 다 이때 만들어진 거거든요.

    한홍구 : 그렇죠. 중정부가 한 것도 있고 보안사가 한 것도 있지만. 그런 곳의 통제를 중정부 대공수사국이 한 겁니다.

    김어준 : 그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대공수사국장으로 대공수사를 총괄한 분이고. 그래서 최근의 영화들이 김기춘을 찾아가서 간첩 조사 사건 피해자들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 거죠.

    한홍구 : 정말 머리 좋은 이 양반이 하시는 말씀이, 기억이 안 납니다. 이러죠.

    김어준 : 그런 다음에 이제 전두환 시절에는 등용이 제대로 안 되었던 거 같고요.

    한홍구 : 70년대 후반에 어떤 사건이 있었냐면 전방에서 대대장이 월북을 하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대장이면 웬만한 작전 계획을 다 아는 사람이니까 군에 초 비상이 걸렸고 이 사건을 조사해봐라 했더니 알고 보니까 사단보안대에서 이 대대장의 약점을 잡고 너무 갈구니까 못 견디고 월북했다, 이렇게 됐거든요.

    김어준 : 학자가 갈구니까가 뭡니까.

    한홍구 : 군대 얘기하다보니 그런 거죠.

    김어준 : 하하, 기분 좋아.

    한홍구 : 딴지일보의 용어를 좀 썼습니다.

    김어준 : 어쨌든 괴롭히니까, 네.

    한홍구 : 그렇게 월북을 했는데. 보안대를 전반적으로 손을 봐라하는 지시를 내려서. 김기춘이 그 작업을 했습니다.

    김어준 : 군 보안사를 손봤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거기서 기분이 나빴군요.

    한홍구 : 그리고 한 2,3년이 지났는데 전두환은 아마도 그 뒤에 보안사령관을 맡았을 거고요. 그 10.6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보안사가 중정부를 손보는 정도가 아니죠. 그런 시기가 되어서 보안사에서 중정부를 접수하면서 김기춘이 어디 있어, 하고 찾았는데. 그때 며칠 전에 김기춘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까, 평생의 은인인 신직수가 법률 특보로 가면서 김기춘을 청와대 법무 비서로 데려갔습니다. 그때 만약 중정에 있었으면 거기서 인생이 끝났을텐데. 그래서 그건 면했는데. 전두환이 집권을 하면서 찬밥을 먹게 되고. 그때 재밌는 게 박철원 있지 않습니까. 박철원에게 충성 편지를 보냈고, 살려달라고.

    김어준 : 잠깐만요, 누가요?

    한홍구 : 김기춘이.

    김어준 :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5공 때 찬밥을 먹고 있으니까.

    한홍구 : 그렇게 되면서 박철원에게...

    김어준 : 당시에 오른팔이었죠.

    한홍구 : 오른팔까진 아니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한참 후배인데. 싹싹 살려달라고 편지를 보냈고.

    김어준 : 그건 팩트입니까?

    한홍구 : 그건 박철원 회고록에 나와 있습니다. 회고록에서 없는 얘기를 지었을 리는 없고. 그래서 박철원이 허화평에게 이야기를 잘해서 옷을 벗는 건 면하게 해줬다, 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안사 쪽에서 제일 찍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던 게.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는 최고의 과제가 5공 청산이었잖아요. 그러다보니 검찰 쪽에서 똑똑하고 5공 때 찬밥 먹은 사람이 누구냐, 해서 김기춘이 검찰총장이 되는 겁니다.

    김어준 :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한홍구 : 제가 표현을 뭐라고 했냐면, 김기춘이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 같아요.

    김어준 : 포레스트 검프... 하하.

    한홍구 : 장면장면마다 등장하고요. 생명력으로 얘기하자면 바퀴벌레가 울고 갈 생명력이 아닌가.

    김어준 : 제가 한 말 아니고요. 명예훼손, 본인이 당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하여튼 생명력이 대단하네요.

    한홍구 : 검찰총장을 최초의 임기제로 맡아서 임기를 마쳤어요.

    김어준 : 검찰총장으로 컴백했고, 이어서 법무부 장관을 하고. 완전한 부활이네요.

    한홍구 : 약간의 텀이 있는데. 그 텀 사이에 중요했던 건 공직을 떠났잖아요. 아침 9시면 넥타이 매고 가방을 들고 2층 서재로 출근했다가. 12시에 점심을 잡수시고 1시에 다시 출근했다가 6시에 퇴근을 해서 그때 비로소 넥타이를 풀렀다는 전설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런 캐릭터가, 문제의 7시간 있지 않습니까. 어디 계신지 나도 모르겠다 그 장면을 보면 노인의 짜증까지 묻어나는 대목 아닙니까.

    김어준 : 본인의 업무 스타일과는 다른.

    한홍구 : 통제가 안 되고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한 짜증까지 겹쳐있었던 것 같고요.

    김어준 : 잠깐만요, 교수님. 저희가 정말 재밌는데. 방송이 3분밖에 안 남았어요. 노태우 시절까지 밖에 안 왔는데 아직 갈 길이 먼데. 아무래도 일단 인터뷰 2탄을 얘기해놓고요. 남은 시간 가보겠습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 완전히 부활해서. 검찰 총장 첫 임기를 마치고. 바로 법무부 장관을 하고.

    한홍구 : 조금 텀이 있는데. 무슨 사건이 터지냐면 분신 정국이 있었죠. 대학생들이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것을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김어준 : 뒤집죠.

    한홍구 : 김기설이라는 한 청년이 분신을 했는데 그 유서가 강기훈이라는 사람이 대신 써줬다는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써서 밀어붙였는데.

    김어준 : 20, 30대는 잘 모르실텐데 90년대 초반에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군사정권 연이어지니까. 학생들 중에 극단적으로 분신까지 한 학생들이 있었던 거죠. 분신을 한 학생의 유서를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줬다는 대목.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왜 자신이 분신을 하는데 유서를 맡깁니까. 그런 사건이 만들어진 거죠.

    한홍구 : 그 사건을 전체적으로 꾸민 게 검찰이란 겁니다. 청와대 비서실장, 안기부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민정수석, 노태우의 측근 참모. 이 사람들이 다 검찰인데. 왜냐면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안기부가 한 발 물러나고. 검찰이 등장해서 검찰이 그 전까지는 안기부에 밀려 있다가 이제 밀고나가는 사건의 핵심이었죠.

    김어준 : 검찰이 공안의 중심에 섰을 때 바로 이 분이...

    한홍구 : 총사령관이었죠.

    김어준 : 그래서 그 강기훈 유서대필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그때 이 분이 총책을 했군요, 또.

    한홍구 :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한 건 아닌데 중간에 법무부 장관으로 교체투입 되서 그 사건을 깨끗하게 마무리해서 정권이 사활적 위기가 걸린 상황을 아주 무난하게 극복을 했던.

    김어준 : 이 분이 그때 만들어낸 사건들 대부분 무죄가 났어요, 지금. 그런데 20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요.

    한홍구 : 20년이면 짧은 겁니다.

    김어준 : 그래요?

    한홍구 : 재심사건에서 20년 걸리면 짧은 겁니다.

    김어준 : 자, 아직 90년대 초반까지 왔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나머지 20여년은 다음에 조만간 모시는 걸로. 지금까지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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